내 친구들은 수도 없이 나의 결함을 지적해 주었고, 내 외양의 문제를 지적해 주었다. 여러 해 전 내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목사로 시무할 때였다. 겨울이면 십만 가구에서 내뿜는 더러운 석탄 연기 때문에 하늘이 어두웠다. 그들은 그 도시를
“Auld Reike!”라 불렀다. 로스 앤젤레스에 스모그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에딘버러와 런던과 맨체스터의 하늘은 이미 스모그로 가려 있었다. 흰 셔츠를 새로 갈아입고 집에서 교회까지 걸어가면, 겉옷과 셔츠 깃이 닿는 부분에 온통 검정이가 한 겹 끼어 탄광에서 나온 사람 같아 보였다. 때로는 눈송이 같은 검정이가 내 뺨에 점점이 묻어 있었다.
“하딩 목사, 얼굴에 검정이가 조금 묻었소”라고 친구는 말해 준다. 그 말에 내가 어떻게 대답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얼굴이나 깨끗이 하시오!” 그랬을까? 물론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고맙소”라고 대답하고 얼굴을 닦던가 경우에 따라서는 물과 비누로 다시 얼굴을 씻곤 했다. 내 친구는 나를 중상한 것도 아니고 조롱한 것도 아니다. 그는 나를 도와준 것이다. 그가 마음으로 바란 것은 내 얼굴이 깨끗해지는 것이었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