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라오디게아 시대(1844~ )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의 실망에 직면하고 있다.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 다음에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뒤따라 온다. 형제 사랑의 아름다움 대신에 미지근함과 자부심이 들어선다. 빌라델비아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속히 임하리라”(계 3:11)고 하셨다. 예수님은 속히 임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그의 교회가 예수님을 외면하고 있다. (131.1)
 요한계시록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교리적인 신조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없다. 예수님께서 주의를 요청하신 문제는 좀더 기본적인, 즉 뿌리 깊은 마음의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선행에 대해서 열의가 없으며 외견상으로만 영적으로 보일뿐 실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결여된 종교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131.2)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이 일곱 교회의 경험은 역사상 특정 교회 전체의 경험을 반영할 수도 있고 일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을 반영할 수도 있다. 예언적인 상징으로서의 일곱 교회는 각 시대별 교회의 지배적인 경향만을 나타내고 있다. (131.3)
 빌라델비아 시대가 끝나는 19세기 중엽 이후에도 그리스도교는 전체적으로 볼 때 여전히 정력적이며 활력이 넘쳤다. 어떤 분야에서는 지난 시대보다 더 발전적이었다. 선교 사업이 더 확장되었다. 새로운 열성적인 교단들이 발족하였다. 자선 활동에 엄청난 자금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다. 이 변화에 대해서는 12장14장에서 좀더 자세히 취급될 것이다. (131.4)
 이제는 1844년에 미국의 감리교와 침례교를 내부적으로 분열시킨 첫 균열에 대해서 주의를 돌려보도록 하자. 당시 감리교와 침례교는 각기 그 신도의 절반이 노예 제도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제도로 생각하고 노예 제도의 철폐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좀더 미묘하고 영속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친 원인은 개신교가 너무나 서둘러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인 데 있었다. 진화론(進化論)에 기초된바 인간 진보의 불가피성에 대한 새로운 사상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새로운 사상과 결합되어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던 종전의 태도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들의 태도가 이렇게 변화되면서 제칠일 안식일에 대한 적개심도 병행해서 일어났다. (131.5)
 그리고, 역시 물질주의가 그리스도적 가치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131.6)
 누구든지 생명 보험과 보트(배) 하나와 자동차 세 대와 가옥 두 채만 장만하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은 대부분 이 둘을 겸하여 섬기려고 애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좋은 그리스도인도 되지 못하고 세상의 재물을 모으는 데도 성공치 못한다. (131.7)
 “크리스차니티 투데이”는 미국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주요 대변지이다. 1980년 5월 1일자 이 잡지가 발표한 한 여론 조사의 결과를 보면 전체 미국인의 94%가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79%가 거듭남을 경험했다고 말했으며, 45%가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이 잡지는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이 국민들의 종교심은 확실히 강하다”고 하였다. (131.8)
 그런데, 이 동일한 잡지의 보고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가톨릭 신도의 3분의 1이 한 번도 성경을 읽어 본 일이 없다고 하였으며 개신교도의 24%만이 주일마다 정기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고 했으며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의 42%가 십계명을 네 개 이상 제시하지 못했다. (131.9)
 미국 국민의 94%가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해외 선교를 위해 지출하는 금액의 6 배 이상을 애완 동물에 지출하고 있다. (132.1)
 제3세계에서는 해마다 5세 이하의 어린이들 1500만 명이 죽어가고 있다. 유엔의 보고에 의하면 그 수의 90% 즉 13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은 그 가족들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만 있어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제3세계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려면 10 년간 해마다 30, 40억 불($)을 지출해야 할 것이라 한다. 엄청난 경비이다. 그러나, 인구의 거의 모두가 그리스도인인 미국이 해마다 주류성(酒類性)음료에 지출하는 경비에 비하면 별 것이 아니다. (132.2)
 “크리스챤 투데이”“이 나라의 종교심이 확실히 강하다”고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인의 종교심은 더 강해야 할 필요가 있다. (132.3)
 그리고 만약, 미국이 그리스도의 이상(理想)에 크게 미급하다면 유럽의 교회나 다른 서방 국가들의 형편은 이보다도 훨씬 못할 것이다. (132.4)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정신이 해이하고 미지근할 것이란 사실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뿐만 아니라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신 그리스도의 고민어린 질문에도 예시되었다. 그리고, 잠든 열 처녀의 비유에도 나타나 있다. 이 열 처녀 중 다섯은 등불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라 하셨다. 그러나, 이 열 처녀들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해 본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이 열 처녀는 마음이 반반으로 갈라진 처녀였다. 사도 바울이 “말세의” 교인들에 대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딤후 3: 1, 5)한다고 했을 때에도 같은 의미인 것이다. (132.5)
 이상과 같은 개략적인 교회 역사의 참고를 가지고서도 우리의 예상의 정당성이 입증 되었다. 일곱 교회는 예언적 상징으로서 그리스도교 역사의 일곱 시대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긴 기간을 통하여 나타난 그리스도의 인내는 참으로 대단하다. 그을음 투성이인 그의 교회와 칠칠치 못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 하늘의 촛대지기가 바친 정성은 놀라울 뿐이다. (132.6)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촉박한 지금 우리가 라오디게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 마음이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다. (132.7)
 예수님께서 자신을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분으로 나타내셨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한다. (1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