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8:2~9:21 — 심판의 경고 나팔
 서론
 메뚜기들이 끝없는 구덩이(무저갱)로 부터 물밀듯 쏟아져 나온다. (221.1)
 독수리가 공중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불붙는 큰 산이 바다에 던지워 바다가 소리를 내며 끓는다. (221.2)
 우리는 이제 일곱 나팔의 장면에 도달했다. 그러나 일곱 나팔의 장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상한 대로 하늘 성소에 위치한 도입부적인 장면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서 마지막 시대의 임무와 보장의 장면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221.3)
 우리는 이미 일곱 인을 연구할 때 성소의 장면과 마지막 시대의 장면이 유사하게 배 치된 모습을 살핀 바 있다. (221.4)
 일곱 나팔과 일곱 인
 사실 우리는 성소와 말세의 장면에 관한 문제에 덧붙여 일곱 나팔과 일곱 인 사이에 있는 몇 가지 비교들을 이끌어 낼 수가 있다. 예컨대 일곱 나팔과 일곱 인은 모두 넷과 셋으로 묶어서 처리되고 있다. (221.5)
 일곱 나팔 : 심한 심판으로 세상을 경고함. (8:2~11:18).

 1. 도입부의 성소 장면 : 천사가 제단에서 향을 드리며, 불을 던짐. (8:2~5).

 2. 처음 여섯 나팔. (8:7~9:21).

 3. 마지막 때의 할 일과 보증의 장면. (10:1~11:14).

   a. 할 일:요한은 작은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명을 받음.

      한 천사가 말하기를 “다시 예언하라”(땅에서).

      요한은 “성전을 척량하라”(하늘에서)는 명을 받음.

   b. 보증:(땅의) 천사가 종말을 확인함.

      두 증인이(하늘로) 취하여 감.

      하나님의 비밀이 성취됨.

 4. 절정 : 일곱째 나팔, 그리스도의 통치하심, 심판이 이르렀다! (11:15~18).

 3, 4 항은 이 장에서 다룰 것이며 1, 2 항은 이미 앞 장에서 다루었다. (221.6)
 
일곱 교회
(1:10~3:22)
일곱 인
(4:1~8:1)
일곱 나팔
(8:2~11:18)
대쟁투
(11:19~14:20)
마지막 일곱 재앙
(15:1~16:21)
바벨론의 멸망
(17:1~19:10)
천년기
(19:11~21:8)
새예루살렘
(21:9~22:9)
🡸 역사적 절반
진행중인 대쟁투
🡺 🡸 종말론적 절반
대쟁투가 끝남
🡺

일곱 나팔
(8:2~11:18)
혹심한 심판으로 세상에 경고한다
1. 땅 8:7
2. 바다 8:8, 9
3. 강들과 샘 근원 8:10, 11
4. 해, 달, 별 8:12
5. 흑암, 무저갱, 메뚜기 9:1~11
6. 유브라데 강 9:13-21
7. 큰 음성: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11:15-18

일곱 나팔이 전체 계시록의 교차 대구의 어느 부분과 부합되는지 살펴보라.
(222.1)
 앞의 네 인이 하나의 그룹으로 묶여 있는데 이것이 묵시록의 네 기사들이다(계 6:1~8). 그런데, 일곱 나팔에서는 뒷부분의 세 나팔이 같은 모양으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것이 세 개의 끔찍스런 화(禍)이다(계 8:13~9: 21; 11:14~18). 또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에는 네 천사가 네 바람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나오는데 여섯째 나팔을 불 때는 네 천사가 유브라데 강(江)에 결박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계 7:1~3; 9:14, 15). (222.2)
 여기에서는 흥미로운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네 천사가 일곱 인에서 네 바람을 붙들고 있는 것은 심판을 지연시키기 위함이었다(계 7:3). 그런데, 여섯째 나팔을 불 때는 네 천사가 바로 세상에 심판을 가하기 위하여 결박에서 풀려 나고 있다(계 9:14, 15). 일곱째 인을 뗄 때는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했다(계 8:1). 그런데, 일곱째 나팔을 불 때는 하늘에서 “큰 음성 들이 나서” 그리스도의 대관식을 선포하였 다(계 11:15). (222.3)
 심판에 대한 경고로서의 나팔
 일곱 나팔과 일곱 재앙의 사이에 여러 가지 흥미 있는, 비교를 끌어낼 수 있다. 가능한 비교가 많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아예 일곱 나팔과 일곱 재앙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관련 문제와 해답을 참고하라). 그러나 일곱 나팔과 재앙 사이에는 차이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곱 나팔이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곱 나팔이 외치는 교훈을 배운 사람들은 일곱 재앙으로 인한 대 재난의 심판을 겪지 않을 것이다. (222.4)
 그러나 일곱 나팔은 그 자체로서도 대단히 좋지 않은 것이다. 이 나팔들 자체가 심판의 경고가 되고 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조용한 음성으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나 요한계시록의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나팔을 들고 우리를 향해 큰 소리로 “너희 가는 길을 살피라! 조심하라!”고 소리치고 계신다. (222.5)
 비교해서 말한다면 상당히 규모도 적고 또 훨씬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각 가정에서도 가족끼리 피차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고를 발할 때가 간혹 있는 것이다. 또 가끔은 사랑하기 때문에 고함을 지를 뿐만 아니라 벌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장난이 심한 세살백이 어린 아이의 볼기를 가볍게 때려 주는 것과 수백 년 동안 이웃 나라를 괴롭히고 진리를 거역한 한 사회 전체를 잔인한 적군의 손에 내어 맡기기로 한 하나님의 결정을 선포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222.6)
 그러나, 심판을 경고하는 일곱 나팔은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 목적은 “남은 인류”로 하여금 회개케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은 “회개치 않았다”(계 9:20). (222.7)
 나팔 심판은 하늘 성소에서 봉사하던 한 천사의 행위로 시작된다. 162쪽에서 우리는 하늘 성소를 “친근한 장소”로 일컬은 바 있다. 그리고 실지가 그렇다. 사랑이 있는 곳이다. 155, 157쪽에서는 그 곳을 우주 통제소로 일컬은 바 있다. 하나님이 그곳의 보좌에서 우주 전체의 일을 관장하시기 때문이다. (223.1)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일을 주관하시면서 참새 하나가 떨어지는 것까지 감찰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이시다(마 10:29, 30). 하늘의 천사들도 우리들의 일에 개인적으로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기 위해 보내심을 받고 있다(히 1:14). (223.2)
 다니엘 4장 13~18절에서 우리는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과 야심 때문에 백성들에게 압제를 행하게 되자 한 “순찰자”가 내려와 왕을 겸비케 하는 장면을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크나 큰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가족의 형제요 자매들인 우리가 피차에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할 때 크게 염려하신다. (223.3)
 일곱 나팔의 전체 장면엔 참으로 인상적인 장엄함이 있다. 일곱 편지와 일곱 인처럼 일곱 나팔은 요한계시록의 교차 대구에서(역사적인 전반부에 속해 있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곱 나팔과 그리스도교 역사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일곱 편지가 전적으로 일곱 교회를 다루고 있고 일곱 인이 주로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를 취급하고 있는 반면 일곱 나팔은 성경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세계 3대 종교(三太宗敎)와 관련된 것이다. 일곱 나팔은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리스도교를 취급함에 있어 일곱 나팔은 서방 그리스도 교회뿐만 아니라 동방의 희랍 정교회에도 차례로 촛점을 맞추고 있다. 일곱째 나팔은 전 인류를 포함하는 것이다. 일곱 나팔에 대한 연구야말로 숨막히는 경험이다. (2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