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 요한계시록 17장의 음녀를 보니 그 여자는 그 이마에 이름을 새기고 있었다. 요한의 시대에는 음녀들이 머리 띠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는 일이 유행하였다.2 음녀의 이마에 기록된 이름을 보니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의 어미”라 되어 있었다(계 17:5). 우리는 한 고대 제국의 이름으로서 “바벨론”이란 낱말에 이미 친숙해 있다. 바벨론이란 낱말 자체는 바벨(Babel)에서 유래한다. “바벨탑”이라 할 때의 그 바벨이다. 고대 중동에는 여러 개의 바벨탑들이 존재했다. 몇 개의 폐허가 아직도 남아 있다. 에테메난키(Etemenanki) 성전탑이라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인데 그 사진을 맥스웰의 다니엘 연구 61, 62에 소개했다. 그런데 이 바벨탑들은 하나같이 그 꼭대기에 이교 제식(祭式)을 위한 특별한 신당을 마련하고 있었다. 바벨이란 단어의 본래의 뜻은 “하나님의 문”이다. 그러나 바벨탑은 인간이 고안한 종교 예배를 드리는 특별한 장소였다. (453.9)
 최초의 바벨탑을 쌓던 어느 날, 일꾼들은 전혀 예기치도 못했으며 바람직하지도 않은 방언의 은사들을 갑작스럽게 받게 되어 일대 혼란을 겪게 되었다. 그들은 갑자기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서로 떠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피차 간에 알아 듣게 대화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바벨”이란 말에 부정적인 새로운 뜻이 부여 되기에 이르렀다. 이 후로 바벨이란 단어는 “혼잡”이란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다(창 11:1~9). (453.10)
 음녀 바벨론은 자신을 하나님의 한 문, 더 나아가 하나님의 유일한 문으로 생각하고 있다. 엑스트라 에클레시암 논 살루스 에스트(Extra ecclesiam non salus est), 즉 “교회(로마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라는 주장이 수세기에 걸쳐 로마 교회의 공식 교리로 신봉되어 왔다.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눈에는 이 바벨론이 혼돈의 장소이다. 영적 바벨론의 가르침은 진리와 오류를 혼합시켜 사람들을 오도함으로써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454.1)
 영적 바벨론인 로마 교회는 재림 때가 곧 심판의 날이라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죄인들은 죽는 순간에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가르치면서 동시에 죄인들을 영원한 불에 던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하는 분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면서도 교회 회의의 결정이 성경과 다를 때는 교회 회의의 결정들을 성경보다 더 큰 권위로 존중한다. 십계명은 전부 도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르치면서도 로마 교회의 교리 문답에는 둘째 계명의 우상에 대한 금지 조항을 삭제하고 하나님의 안식일인 제칠일을 일요일로 대체시킴으로써 네째 계명을 변경했다. (454.2)
 음녀들의 어미인 큰 음녀
 음녀는 제 머리 띠에 제 이름을 “큰 바벨론, 음녀들의 어미”라 기록하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는 오래 전부터 자신을 모(어미)교로 자처해 왔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주장에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수많은 교회들이 가톨릭 교회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최악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딸, 교회들도 “음녀”가 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454.3)
 딸은 본래 음녀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미의 이름을 따라 호칭되고 있다. 이 딸들의 교회들도 그 어미 교회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으로 호칭되고 있는 것이다. (454.4)
 우리의 토의를 더 진전시키기 전에,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에서는 박해당하는 백성들과 박해하는 교회들 및 국가들에 대해 선별적으로 논평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상기하도록 하자.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과 다니엘는 신자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교회들과 국가들의 최악의 측면들을 강조하고 있다. (454.5)
 예외적으로 요한계시록 2장 19절은 가톨릭 교회가 사회에 끼친, 대단히 훌륭한 공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렇게 한 것은 잘한 일이다. 왜냐하면 중세 시대에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들과 병원들이 서구 세계의 유일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에 관한 지식을 계속 보존하는 데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454.6)
 그러나 다니엘와 요한계시록은 가톨릭 교회 역사의 다른 면 곧 어두운 면이 있음을 오래 전에 우리에게 경고했다. 로마 교회는

 (1)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반대,

 (2) 그리스도의 하늘 봉사에 대한 거부, 또는 그 봉사를 무색케 하려는 노력,

 (3) 하나님의 가장 진실한 백성들에 대한 박해 등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하였다. (454.7)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 시작부터 크게 혹은 작게 위와 같은 특징들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편 주요 개신교들은 “모(母) 교회”보다 나은 교회가 되려는 결의로 발족되었다. (454.8)
 루터 교회의 창시자인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진리의 3대 강령을 재발견했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오직 “성경만이” 궁극적인 권위이며, 믿는 자는 모두 제사장이라는 “만인 사제론”(萬人司祭論)이 그 세 강령이다. 장로교회와 조합교회의 창시자인 존 캘빈(John Calvin)은, 사제나 성자(聖者)들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 여부를 결정하신다는 가르침을 새롭게 깨달았다. (454.9)
 감리교회와 나사렛 교회의 기초를 놓은 존 웨즐리(John Wesley)는, 구원이란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대로 이미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예정설)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한 없이 부여되는 것이라는 “자유 은혜”의 교리를 재발견했다. 침례교도들은 “신자의 침례”라는 가르침을 재발견했다. 사람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이해하고 믿기까지는 교인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455.1)
 이들과 같은 주요 개신교들은, 하나 같이 처음 발족 당시에는 몇몇 새롭게 회복된 하나님의 진리의 빛 속에서 찬연히 빛났다. 오늘날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교회의 창건자들이 발견한 놀라운 진리에 크나큰 신세를 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도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왜냐하면 중세의 가톨릭 교회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중요한 진리들이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455.2)
 비극적인 일이지만 미국에 종교 부흥과 재림 운동이 크게 고조되었던 1840년 대에 미국 개신교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요한계시록 14장 6~12절의 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하였다. 이 과정에 있어서 그들은

 (1) 하나님의 십계명의 안식일을 거절했거나 반대했으며,

 (2)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대속의 봉사를 부정했으며,

 (3) 그때나 그 이후로 책이나 방송망을 통하여 때때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심한 비판을 가했다.

 요한계시록 13장이 실현되면 이러한 교단들은 국가와 결탁하여 안식일 준수자들에 대해 잔인한 배 행위와 무거운 형벌을 가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455.3)
 이들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효이다”(계 13:16, 17). (455.4)
 여러분들은 바벨론에 있는가?
 오늘날 가톨릭 교회나 개신교 교단 내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섬기려는 열의가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벨론”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교회가 십계명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조항을 고의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들의 목사나 신부들이 그리스도의 하늘 성소 봉사를 무시하거나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455.5)
 이와 같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모든 배도한 교단에 소속된 당신의 선량한 백성들을 일깨워 그들이 처해 있는 심각한 위험, 곧 바벨론의 마지막 범죄에 가담하고 있는 위험과 바벨론이 당할 끔찍한 대재앙의 고통을 알아차리게 하신다. 예수님은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당장 나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예수님은 그들을 돌보고 계신다! (455.6)
 그는 “내 백성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계 18:4).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찬송의 노래를 부르도록 예비하라고 하신다. (4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