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7~10). (493.1)
 성경이 지구의 “네 모퉁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해서 염려할 필요는 없다.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우리도 푸짐한 식사란 뜻으로 “정사각형의 식사”(square meal)란 표현을 쓴다. 은유적으로 사용하는 표현들이 많이 있다. (494.1)
 “곡”“마곡”이라는 상징적인 어휘들은 에스겔 38장 2절에 나타나고 있는바 고대 이스라엘의 북쪽 원수들의 이름들에서 빌어 온 것이다. 여기서는 “곡”“마곡”이 동, 서, 남, 북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 곧 이 세상의 모든 세대에 속하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민족들을 대표하고 있다. (494.2)
 구원받지 못한 민족들은 그들의 대사령관인 사단의 지휘 하에 동, 서, 남, 북에서 물 밀듯이 몰려와 하나님의 “사랑하는 도성”을 에워쌀 것이다. (494.3)
 요한계시록은 두 도시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는 음녀, 거짓 어미, 바벨론이라고 하는 대도시이며 다른 하나는 어린 양의 신부이며 참된 어머니인 동시에 새예루살렘인 거룩한 도성이다. 기억하고 있겠지만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땅의 열왕들이 이 음녀의 도성에 대항하여 싸우며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며” “미워”한다(계 17:16). 바벨론은 미움을 당한 도시였다. (494.4)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린 양의 신부인 새예루살렘은 “사랑받는 도시”이다. 이 도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그리스도교회를 상징한다(엡 5:25). (494.5)
 둘째 부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요한계시록은 때때로 차후에 좀더 구체적으로 취급할 것들을 개괄적, 서론적으로 일시 다루는 장면들을 마련하고 있다. 참된 어머니와 표범처럼 생긴 짐승을 소개하는 장면들(계 12:1~6)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사단과 열국들이 하나님의 사랑스런 도성을 침공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그들은 모두 죽어 있는데 악한 나라들이 도대체 어디서 몰려든 것일까 하고 의아하게 여겨진다. 또 새예루살렘은 하늘로 올라갔는데 어떻게 악한 나라들이 그 성을 에워쌀 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된다. (494.6)
 우리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들을 보면서 그 대답을 얻는다. 여섯째 장면에서야 우리들은 죽은 악인들이 천년기 끝에 둘째 부활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일곱째 장면에 이르러서야 우리들은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494.7)
 이 사건을 연대적인 순서로 다시 배열해 본다면 먼저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천년기의 직후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한다. 그 다음에 악인들이 새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다시 죽임을 당한다. (494.8)
 추측컨데 죽은 악인들은, 새예루살렘과 그 행복하고 사랑스런 주민들과 함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부활할 것 같다. 요한복음 5장 28, 29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하셨다. 천 년의 기간을 사이에 두고 두 집단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494.9)
 둘째 부활로 다시 살아난 수없이 많은 죄인들, 다시 기만당하고 싶어 날뛰는 이 죄인들에 둘러싸여 사단은 비로소 그 상징적인 구덩이와 쇠사슬에서 실질적인 해방을 느꼈다. 당장에 그는 열국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과거 세상 마지막 때의 열국들이 그 큰 성 바벨론을 공격하여 이겼듯이 새 예루살렘도 성공적으로 침공할 수 있다고 충동질했다(계 17:16). (494.10)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어찌하여 사단과 그의 무리가 그토록 어리석을 수 있는지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494.11)
 그러나 죄는 모두 어리석은 것이다. 모든 상황을 통털어서 가장 현명한 길은 언제나 하나님의 지도를 따르고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제아무리 사소한 일상 생활의 일에서라도 주님의 뜻을 거역하고 제 고집만을 내세운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악하면 악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사단은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을 거역해 왔기 때문에 그의 어리석음도 절정에 달했다.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아서 그 자리에 앉아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왕노릇하려는 무모하고도 얼빠진 계획으로 마지막 장을 장식한다. (495.1)
 사단의 추종자들도 비합리적인 생각에 너무나 오래도록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사단의 기만적인 예언에 쉽게 속아 그를 따라 나선다. 아마도 그들은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기 때문에 달리 희망도, 기회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아마도 사단의 기적적인 표징과 이적들을 보고 사단이 예수님을 맞서고도 남을 초자연적인 힘의 소유자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495.2)
 “세 개구리”들의 선전도 한 몫을 단단히 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최종적인 전쟁은 사단과 그리스도, 용과 어린 양 간의 오랜 대쟁투의 마지막 싸움인 아마겟돈 전쟁의 두번째 에피소드이다. (495.3)
 여러분들은 그들이 지금 사방에서 몰려 들어와 크고 영광스러운 거룩한 도성의 주위로 집결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가? (495.4)
 

거룩한 성에 대한 사단의 최후 공격에서 악인들은 나폴레옹, 징기스칸, 히틀러, 아틸라 같은 장군들의 지휘를 받을 것이다.
(495.5)
 이 군대의 대열에는, 이미 회개하여 용서받고 변화되어서 그리스도의 안전한 피난처에 피한 사람들을 제외한, 일찌기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죄인들이 동원된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살았던 거인들도 그 곳에 있다. 골리앗과 그 부류들도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 보면서 그 곳에 끼여 있다.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희랍 군대도 거기 있다. 징기스칸, 훈족의 아틸라(Attila), 나폴레옹, 히틀러, 그리고 이들처럼 군사적 재간이 참으로 뛰어난 모든 황제들과 장군들이 그 곳에 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이 첫째 사망으로 죽기 이전에 겪은 수많은 중요한 전쟁에서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4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