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창조와 구속과 소망의 축제) 6. 구속의 기념물 (Samuele Bacchiocchi)
 일부 비평가들은 이 구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셨다는 창세기의 주장을 불신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아버지가 창조적인 활동들을 “이제까지” 일하신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창조 안식일 쉼을 쉬셨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옳은 해석인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라고 말씀하실 때 그리스도가 뜻하신 것은 창조 활동이었는가 아니면 구속 활동이었는가?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의 사상이 헬라계 유대사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요한복음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사상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태초”(요 1:1)라고 알려진 까마득한 옛날에 “만물이 ∙∙∙ 지은바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요 1:3). (57.1)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사업이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를 통하여 명시되어 있고 또 그리스도의 구속 봉사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9 cf. 5:36; 10:37, 38; 14:11; 15:24)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의 구속적인 성격은 눈먼자를 고치신 일에서 명백히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이 일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요 9:3). 그리스도의 자기 변호의 강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식일이 창조를 통하여 우주에(창 2:2-3), 출애굽을 통하여 구속에(신 5:15; 출 20:8-10)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세속적 활동을 중단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였으며 동료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구속주 하나님을 닮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유대인들도 인정하고 있는, 이같은 안식일 신학을 토대로 하여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가 안식일에 수행하고 계시는 “일”의 합법성을 옹호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일으키고 구원의 심판을 집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일이기 때문이다. (57.2)
 그리스도께서는 논쟁의 여파를 가라앉히기 위하여 현명하게 할례의 비유를 부연하셨다(요 7:22-24). 만일 제사장들이 할례 의식을 통하여 언약의 구원을 이루고자 하여 안식일에 인간의 248지체(유대인들이 계산하는)중 한 부분을 잘라내는 것이 합법적이라면, 그 날에 인간의 전신을 고쳐주었다고 하여 자신에게 분노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그리스도는 주장하셨다. 그리스도께는 안식일이 전인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일하시는 날이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두차례의 치유에서 똑같이 병자의 육체적 질환을 고쳐준 같은 날 영적인 치료를 위하여 병고침 받은 두 사람을 찾으셨던 것이다(요 5:14; 9:35-38). (57.3)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안식일 구속 활동을 옹호하기 위하여 언급하신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요 5:17)라는 말씀과 “때가 아직 낮이매 ∙∙∙ ∙∙∙ 우리가 일하여야 하리라”(요 9:4)는 말씀은 모두 창조의 일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구속의 일을 언급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다 마치시고 쉬셨다. 그러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회복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제까지 일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58.1)
 안식일의 이와 같은 구속적 역할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뜯은 이야기를 통하여 더욱 명확해졌다(막 2:23-28; 마 12:1-8; 눅 6:1-5). 안식일을 범했다는 비난으로 부터 제자들을 옹호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논증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만일 다윗이 자기의 허기를 면하기 위하여 거룩한 떡을 먹은 것이 옳은 것이라면, 제자들이 안식일의 거룩한 시간에 곡식 이삭을 잘라 그들의 배 고픔을 면하려 한 것 역시 합법적이라는 주장이다. 거룩한 떡과 거룩한 시간은 인간의 궁핍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예외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안식일 계명의 목적이 생명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전하게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막 2:27). 두번째 논증은 제사장들의 예에서 끌어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안식일에 행할 수없는 많은 활동들을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에서 평일보다 더 많이 행하고 있었던 사실을 지적하셨다(민 28:9, 10). 그 활동들은 제사장들에게 “죄가 안되었다”(마 12:5). 불쌍한 죄인들에게 용서와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계획된 안식일 사업의 구속적 성격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역할과 봉사를 완전하게 성취시키고자 오신 “성전보다 더 크신 분”(마 12:6)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가련한 죄인들을 위하여 안식일에 자신의 구원 활동을 강화하는 것은 적법한 일이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은 의당 그분께서 하신 일을 똑같이 행해야 하는 것이다. (58.2)
 그리스도에게 있어서는 안식일이 “자비이며 제사가 아니다”(마 12:7) 즉 안식일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애굽의 속박과(신 5:15) 죄의 굴레(눅 5:18, 19; 13:16; 요 5:17)로부터 구속받은 기념일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의 진정한 예배 절차는 먼저 곤궁에 처한 인간에게 실제적인 사랑의 봉사를 하고 그 다음에 종교적인 규정을 이행하는 순서인 것이다. 안식일의 이같은 근본적인 구속적 가치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마태복음에 기록 되어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금 막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의 서언의 의미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구주께서는 (58.3)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59.1)
 당신께 나아와 배우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쉼은 무엇인가? 여러 주석가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안식일에 모두 이루어졌다고 논한다. 왜냐하면 그 말씀이 위에서 언급한 안식일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다음 절 “그 때에”(마 12:1)와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쉼은 다니엘로우(J. Danielou)가 말한 “참 안식일의 아나파우시스적 쉼(노동으로 부터의 쉼)”4 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주시는 안식일의 쉼이 랍비들이 백성들의 어깨위에 무겁게 부과시킨 안식일 규칙들의 멍에에 비하여 “쉽”“가벼운”짐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59.2)
 그러면 무거운 계율적 의무들을 실천함으로써 안식을 얻고자 헛되이 애쓰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제시하시는 새로운 “안식일 쉼”은 무엇인가?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당신의 구속 사명의 적절한 상징으로 삼으신 사실을 살핀바 있다. 따라서 그분께서 무거운 짐을 진 영혼들에게 주신 안식일 쉼은 그 날의 준수 방식에 관한 보다 새롭고 보다 단순한 규칙 조항이 아니라 그날에 구원의 축복을 더욱 풍성히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 쉼을 통하여 육체적인 휴식 뿐만 아니라 당신의 용서와 구원의 평강과 기쁨을 주시기 때문이다. (59.3)
 안식일의 이러한 구속적 의미는 히브리서에 반영되었다(히 4:2-11).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일 쉼”의 영원한 축복을 재확증 받고 있으며 그 축복들을 받아들이도록 권고 받고 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안식일 쉼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으로서 이해하는 세속적 개념을 거부한다(신 12:9; 25:19). 그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에게 준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 후에 당신의 백성에게 마련해 주신 “안식일 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창조 후에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 안식은 “오늘날” 구원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에 위하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는 안식일 쉼은 유대 민족만을 위하여 배타적으로 예비된 물질적인 경험이 아니라 그 보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영원한 영적 축복인 것이다(히 4:2, 3, 11). (59.4)
 필자는 안식일의 구속적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이 간단한 개관을 통하여 안일이 피조물에 대하여 쏟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관심에 관한 최초이며 가장 분명한 상징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세상 사물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거룩한 임재의 축복을 주셨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하나님과 인간의 완전한 관계를 밝히는 매우 적절한 표현으로 시작되었다. 인간이 타락한 후에 안식일은 구속 역사의 여러 시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최종적인 구속의 확증을 계속하여 제공해 왔다. (59.5)
 안식일의 구속적 의미는 메시아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안식일 봉사에서 가장 잘 나타나났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안식일이 의미하는바 구속적 약속의 성취로서 선포하셨다(눅 4:18, 19).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눅 4:18, 19), 불쌍한 죄인들을 위한 자신의 구속 활동을 안식일에 더욱 강화시겼다(눅 13:16). 이로써 “사단에게 매인 바된” 영혼들이(눅 13:16) 안식일을 그들의 해방의 날로서 경험하고 회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는 금요일 오후에 땅에서의 당신의 구속 사업을 완료하신 후 “다 이루었다”(요 19:30)고 말씀하셨으며 무덤에서 쉬심으로써 안식일을 구별하셨다(눅 23:53, 54; 마 27:57-60; 막 15:42, 46). 창조 사업의 끝에 있었던 안식일 안식이 완결되고 완벽한 창조에 대한 삼위 하나님의 만족과 기쁨을 나타낸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 끝에 있었던 안식일 쉼은 인간에게 회복된 완결되고 완벽한 구속에 대한 삼위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과 봉사에 비추어 볼 때, 안식일 안식은 구주께서 죗짐을 진 영혼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구원의 축복을 집약하고 있다고 하겠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경험을 얻기 위하여 안식일에 자신의 행함을 중지하는 신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달성하려는 인간적 노력을 포기하고 대신에 하나님이 자기 구원의 창시자요 완성자임을 인정한다. (59.6)
 미 주
 1. Ellen White, Patriarchs and Prophets (Mountain View, Calif.:Pacific Press, 1958), 313.

 2. Hans W. Wolff, Cormdia Theological Monthly, 43 (1971), 500.

 3. Abraham Heschel, The Sabbath:Its Meaning for Modern Man (New York:Fanar, Stkraus and Young, 1951), 10.

 4. Jean Danieiou, Bible and Liturgy (South Bend, Ind.:University of Notre Dame, 1956), 226. (5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