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 1, 2). (499.1)
 우리는 여기 일곱째 장면에서 처음으로, 거룩한 도성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광경을 읽고 있다. 다섯번째 장면(계 20:9)에서 바다 모래같이 허다한 백성들이 복스러운 성을 에워쌌다는 기사를 볼 때에는 단지 무언가를 추론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이제야 분명히 확인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여기에 언급된 것은 지구가 불못에서 불타는 동안에는 새예루살렘이 공중에 떴다가 불길이 다 식은 다음에 그 거룩한 성이 다시 땅에 내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499.2)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3~5) 하셨다. (499.3)
 천년기의 일곱째 장면은 요한계시록 전체가 향하여 움직이는 정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또 문학적으로 가장 호소력 있는 대목의 하나이다. (499.4)
 이것은 하나님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놀랍도록 잘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렸을 때 우리의 부모님이 그러했듯이 우리의 어깨를 팔로 안으시고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며 모든 것을 전혀 새롭게 만들어 주신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시다! (499.5)
 기쁨에 넘친 새 땅의 주제가 성경에 흔히 나타난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다(고전 2:9, 10). 그리고 만일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났다”면 그 “나타난 일은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신 29:29)다. (499.6)
 베드로후서 3장 13절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시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원 전 700년경에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하면서 동일한 주제를 노래했다. (499.7)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499.8)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사 65:17~19).
(501.1)
 그렇다면 이같이 넘쳐 솟구치는 기쁨의 원천은 무엇, 또는 누구인가?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이 눈물을 씻기신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 흘릴 일을 없이 하신다.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기쁨을 창조하신다. 하나님 자신이 기뻐하신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계 21:3)신다”. (501.2)
 우리 모두에게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왕 조지는 폭탄으로 피해를 본 지역을 그가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그 희생자들에게 크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그러한 지역들을 방문할 수 없었다. 신문들은 폭탄 세례로 집이 무너진 한 씩씩한 희생자가 “만일 국왕이 한 번만 와서 보아 주기만 해도 우리의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만왕의 왕에게 가까이 나아갈 때에 그 어떤 때보다도 큰 기쁨을 경험할 것이다. 다윗 왕은 시편 16장 11절에서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다고 노래했다. (501.3)
 그는 기쁨이 충만하다고만 하지 않고 충만한 그 기쁨이 영원하다고 하였다. “주의 우 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영원한 행복이다. (501.4)
 영원이란 얼마나 긴가?
 영원이란 것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영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한번 질문해 보라. (501.5)
 수년 전 필자의 가족이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 요세미티(Yosemite)계곡에서 야영을 했었다. 우리 머리 위로 4,000 피트 높이의 핼프 돔(Half Dome)의 절벽이 깍아 지른듯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일천 년만에 한 번씩 핼프 돔 위를 날아 오르는 한 떼의 새들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 중 어느 한 새가 그 때마다 날개로 이 바위를 치고 간다고 상상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찬구는 유쾌하게 웃으며 “핼프 돔이 이 새의 날개 스침으로 다 닳아 없어졌을 때 영원은 드디어 시작된다”고 말하였다. (501.6)
 아마 여러분들은 영원이라는 것을 광년(光年)의 개념을 빌어서, 또는 별들의 조용한 순환을 빌어서 생각할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501.7)
우리가 그 곳에 10,000년을 살 때에
광채는 태양처럼 빛나고
우리가 처음으로 찬송을 부른 이후
영원히 하나님 찬송을 노래하리6
(501.8)
 만물이 새로와짐
 하나님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약속하신다(계 21:5). 그리고 불못이 다 꺼진 후 새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그 성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안전하게 거할 우리들은 하나님이 지구를 새롭게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처음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시 33:9)고 하셨다. 하나님이 다시 폭포와 물새들, 그리고 동물들과 나무들을 부르시는 것을 들을 때, 그리고 우리 눈 앞에서 그것들이 형체를 이루는 광경을 볼 때, 우리의 감동은 어떠할까! (5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