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확대경 - 출애굽기 제 III 부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24장) 제 8 장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심 (출애굽기 19, 20장)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주로 과거에 있었던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이스라엘이 현재와 미래에 그들이 이행해야 할 일을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 부분의 사실에 기초하여, 이스라엘이 언약을 이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세 번째 부분은 처음 두 부분의 결과에 관한 것으로,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면 이스라엘이 어떠한 나라가 될 것인지 또 그들의 장래가 어떨 것인지에 대한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96.4)
 첫 번째 부분은 박진감이 넘치는데 모세와 이스라엘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가까운 과거에 경험했다는 사실로 시작한다. 첫 부분의 시작은 “너희가 보았느니라”는 단어로 시작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그들의 눈으로 봄으로 마음의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심판하셨으며 바로의 군대를 완전히 소멸시키셨다. (196.5)
 이스라엘을 독수리의 날개로 업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은 신명기 32:10-12에 어미 독수리와 새끼 독수리에 관한 묘사로 극명하게 잘 나타나 있다. 신명기 32장에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 위에 너풀거리며 새끼가 날 때 도와주기 위하여 날개를 펴 보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 하셨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이 땅에 존재하도록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살피시고 훈련 시키셨다. 하나님의 강한 모성애 같은 이미지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성경 구절을 잘 음미하기 바란다. 이와 같은 묘사는 시편에도 또한 자주 등장한다(시편 17:8; 36:7; 57:1; 61:4; 63:7; 91:4). (197.1)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내게로 인도하였다”라고 말씀하신다. 전체적으로 개인적 관계가 강조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매우 친밀한 개인적 관계를 원하시고 있다. 구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살핌은 개인적 관계가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모습은 그분께서 직접 당신의 백성에게 가까이 다가가시는 모습이다. 하나님 당신께서 원하셨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197.2)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역사하신 것을 살펴 봤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의무를 살펴보자. 두 가지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데, “너희는 내게 순전히 순종하라”“ 내 언약을 지키라”였다(19:5). 이 두 가지 조건 속의 모든 단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으로부터 무엇을 원하셨는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어들이다. (197.3)
 이스라엘은 순종해야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순종의 큰 괴리가 있는 신학을 너무나 오래 들어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믿음은 좋은 것이고, 순종은 불유쾌하고 율법적이라는 것이다. 고대 셈족의 사고에는 이와 같은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은 순종하였다. 만약 순종하거나 따르고자 한다면(히브리어 동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듣다” 또는 “따르다”이다), 그것은 믿음을 소유했음을 암시한다. 이 두 단어는 서로 상반된 단어가 아니라 상호보완(相互補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 단어가 신뢰하여 받아들임(믿음)을 암시한다면 다른 단어는 따라가는 행위(순종)를 암시한다. 순종은 결코 율법적이지 않다. 이러한 태도는 순종(또는 믿음)을 율법적으로 오도하는 행위이다. (197.4)
 그들의 순종은 단순한 순종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다. 이 순종은 어떤 추상적인 규칙을 노예와 같이 단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구세주께 온 마음을 바치는 행위였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조건에서 순종이 개인적인 관계의 문제임을 매우 분명히 하셨다. 물론 이스라엘은 많은 면에서 율법, 규례, 결례 등에 순종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령들은 일반적으로 앞에 “나의” 라는 부속적 단서를 달고 있었다. 이 율법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이었다. 순종하라는 명령은 당신의 날개로 우리를 품으셨던 그 하나님을 사랑하며 따르라는 요구였다. (198.1)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순종해야 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배타적이며 완전한 순종을 의미했다. 그분께서는 어떠한 경쟁자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은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신은 없었다. 선택적 순종은 받으실 수 없었다. 그분께서는 단순히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198.2)
 또 다른 언약의 조건은 “내 언약을 지키라”였다. 처음 두 단어는 앞서 살펴본 성경절과 매우 밀접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언약에 따라 순종하여 지켜야 했다. 언약을 지키는 행위는 나의 개인적 하나님의 되시는 그분의 언약에 대한 이행을 의미했다. (198.3)
 언약이라는 단어는 특별한 고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 기원과 의미, 신학적 비중은 교회와 학계에서 수년간 다루어 왔다. 그간 논의된 모든 논제들을 낱낱이 살펴볼 필요는 없고 출애굽기에 나타난 언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약간의 지침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198.4)
 언약의 개념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우리는 언약이라는 단어(그리고 언약과 관련된 단어의 개념)가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상당히 보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특별한 상황은 정치적 조약 특별히, 국제적 조약에 관한 것일 것이다. 언약으로 국제적 조약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문서들은 다음의 시기에 관한 것들로 히타이티 제국(The Hittite Empire ca.1450-1200 B.C.)의 것과 시리아의 아라믹 조약(9세기 B.C.)과 앗시리안 조약(9-7세기 B.C.)이 있다(Sarna 135ff 참조). 출애굽과 가장 가까운 시기로 학자들의 초점은 히타이티 제국에 집중되어져 있다. (198.5)
 이 조약들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범주에 속하는데, 첫째로, 비교적 동등한 위치의 당사자간 조약과 두 번째로 권세자와 약소자 사이의 가신(家臣) 조약이다. (199.1)
 어떤 학자들은 시내 산에서의 언약을 히타이티 제국에서의 가신관계의 조약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하지만, 비록 히타이티 조약과 많은 유사한 점이 있지만 의미상 상이한 점들도 많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Sarna, 140-144 참조). 많은 상이한 점들 가운데 특별히, 구약은 하나님께서 일개의 왕과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 전체와 언약을 체결했다는 면에서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출애굽의 언약은 하나님 자신이 언약과 관련된 율법의 근본이 되시는 까닭에 매우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199.2)
 이 점에 관하여 많은 토론이 있을 수 있지만, 더욱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8장 끝에 있는 단어탐구(Researching the Word)와 심층연구(For Further Study) 부분을 살펴보기 바란다. (199.3)
 결론적으로, 언약의 기원에 관한 개념은 고대 근동문화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 또한 익숙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시의 보편적 의미의 언약개념을 사용하시어 언약을 체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익숙한 것을 사용하시어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도록 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다른 유사한 정치적 조약 또는 언약들을 형편없이 엉성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강력하고 독특한 언약관계를 체결하신다. (199.4)
 시내 산에서의 언약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우리는 이 언약을 너무 새롭고 독특한 것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통하여 새로운 격정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지만 우리는 이 사건의 뿌리가 훨씬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2:24, 25). 이러한 까닭으로, 시내 산의 언약은 그 뿌리를 그들의 조상에 두고 있다. (199.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실 때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실 때와 똑 같은 언어를 사용하셨다(창 17:9, 10). 순종의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창 22:18; 26:5 참조). 순종은 출애굽의 초기에 요구되었다(15:26; 16:28). (200.1)
 그러므로 이 출애굽의 언약은 완전히 새로운 다른 개념의 언약이 아니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 때와 같은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언약의 존재는 일찍이 있었던 이전의 언약에 기초하고 있다. 실지로 필자는 이 언약이 과거의 언약의 진보라고 믿고 있다. 관련된 기본 원칙들은 동일한 것이다. (200.2)
 하지만 특별한 역사적 상황을 기초로 하고 있는 이 새로운 언약의 조건들은 의미심장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일개의 개인과 세운 것이 아니라 한 무리의 백성과 세우셨다. 비록 이전의 언약이 더 포괄적인 무리(아브라함의 자손들)와 세운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개인과 언약을 세우셨던 것이다. 이제 모든 백성이 화답할 차례가 되었다.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환경에 처한 백성들에게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이전의 율법에는 기록되지 않은 새로운 상황의 새로운 규례들이 상세하게 진술된다. 하지만 순종의 원칙들은 늘 존재했다. (200.3)
 이제 이 언약이 분명하다고는 하지만, 필자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언급하고 있는 언약은 어떤 율법적인 행위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언약의 기초는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분의 은혜로 구원하셨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항구적인 관계에 대한 그들의 반응을 요구하셨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계속 구혼을 하고 계셨다. 구원을 조건으로 순종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 자유인으로 존재했다. 이스라엘은 계속하여 하나님과 동행할 것인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