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의 요한계시록 연구 요한계시록 8:2~9:21 — 심판의 경고 나팔 1. 때때로 사랑은 고함을 지르게도 하고 매를 들게도 한다
 사랑하면서도 벌을 주게 되는 몇 가지 이유
 일반적으로 처벌은 우리로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응당한 고통을 겪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기 때문에 고함이 터져 나오고 처벌을 가하게 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로 회개하여 나쁜 길에서 돌이키게 하려고 우리를 처벌하는 것이며, 둘째는 우리들을 원수들의 핍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원수들을 처벌하는 것이다. (227.10)
 철이가 어린 돌이와 더불어 과자를 나누어 먹지 않고 혼자 과자 접시를 독차지한다면 아빠나 엄마가 철이에게서 과자 접시를 빼앗아 낸 다음 욕심스럽게 굴지 말라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첫째 철이로 하여금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하여 더 이상 동생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고 둘째는 과자를 먹을 수 있는 정당한 돌이의 권리를 보호해 주기 위함이다. (228.1)
 그런데, 아빠나 엄마는 철이에게서 과자통을 빼앗을 때 단단히 해야 한다. 만약 철이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조용히 타이르는 정도로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전문 상담가들이 흔히 “부정적인 강화”라고 일컫는 바 체벌을 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체벌을 가하기에 앞서 그 아이와 더불어 발생된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철이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그 아이로 하여금 좀더 바람직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심을 극복하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용서하고 도와 주시기를 짤막하게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행실에 대해 너무나 속이 상해서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타이를 수 없다고 여겨지면 아이를 불러서 “철이야 너는 매맞을 일을 했으니 매를 맞아야 하겠다. 지금은 너무 속이 상해서 너와 함께 뭐라고 이야기를 못하겠어. 오후에 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28.2)
 이런 식으로 어린 자녀들을 다루고 있는 부모들이 있는 줄 안다. (228.3)
 한 세기 전에 일부의 사람들로부터 영감 받은 저술가로 존경받는 한 성공적인 어머니가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충고를 남겼다. (228.4)
꾸짖음과 초조함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인간 심령의 나쁜 감정만 솟아날 뿐이다. 어린 자녀들이 비행을 저지르고 반발심에 차 있는 것을 볼 때는 조급히 말하고 행동하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뜸을 들이고 그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여러분도 마음을 진정하도록 하라.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이 벌받을 어떤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만약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여러분의 자녀들을 대한다면 그들은 팔로 그대들의 목을 껴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케 하고 자신들의 과오를 시인할 것이다.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혼자 따로 나와 하나님께서 자녀들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고 그 마음을 다스려 주실 것과 또 자신에게 자녀들을 현명하게 다룰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라. 그대들은 자녀들을 사랑으로 훈계해야 한다.1
(228.5)
 하나님이 우리를 바로잡고 처벌하시는 방법이 이와 같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그렇게 화를 내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자제력을 잃으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는 참으로 놀라우리 만큼 참을성이 많으신 분이시다. (228.6)
 그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느 9:17) 시는 분이시다. (228.7)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는 분이신가를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평치 못한 사람을 기적적으로 없애 주시든지 또는 억제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와 똑같이 그 사람에게도 오래 참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자! (228.8)
 하나님은 어떻게 처벌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벌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다니엘에서 벨사살 왕의 잔치를 토의할 때 이미 밝힌 바 있다. 그의 처벌 방식의 하나는 우리를 위한 그의 보호의 일부를 거두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저지른 행위의 자연적인 결과를 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로마서 1장 18절, 26~28절에서 밝히 진술된 그대로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다. (229.1)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기까지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날마다 우리를 우리 자신들로부터 보호하시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같은 보호는 자주 잘못 해석되고 있다.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고 좀처럼 소리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고집스럽게 우리의 길을 돌이키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어떤 점에서 그의 보호하심의 일부를 철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시게 된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처벌케 하는 방식을 선택하신다. (229.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벌주시는 또 하나의 방식은 우리의 원수들로 우리를 벌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는 그 때까지 우리를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던 손길을 철회하신다. (229.3)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로 우리를 벌하게 하실 때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원수들을 불러다가 우리를 벌하게 하신 것인 양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을 갖지 않고 그러한 기사들을 읽는 세상의 역사가들은 그같은 행위에서는 인간적인 요소들만이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229.4)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들을 이용해서 우리를 처벌하시는 모습은 이사야 10장 5, 6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잔인한 민족인 앗시리아(앗수르)를 오게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게 하시겠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신다. 말씀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내가 그에게 명하여 나의 노한 백성을 쳐서 탈취하며 노략하게” 하리라. (229.5)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앗시리아에 대해 말씀하신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12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주 내가 나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한 후에” 즉 앗시리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충분히 처벌한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리라” 하셨다. (229.6)
 실제로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압제한 것은 앗시리아에게는 죄악이었다. 앗 시리아 민족은 고대의 모든 민족들 중에서도 가장 잔혹하고도 압제적인 민족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앗시리아 민족도 처벌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면, 앗시리아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앗시리아에 대한 보호를 철회하셔서 바빌로니아 민족들로 하여금 그들을 정복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을 처벌하셨다. (229.7)
 이와같이 하나님은

 (1) 당신의 보호의 일부를 철회하심으로써 우리로 우리를 처벌하게 하시며

 (2) 그의 보호의 일부를 철회하심으로써 우리의 원수로 우리를 처벌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밖에도 다른 방법들을 가지고 계신다. 그의 마지막 처벌은 하늘로부터 벌을 내려 지구 전체를 불사르게 하는 것이다. 그 때 “땅과 하늘이” 살라질 것이다(계 20:9~11). 이 불로 인하여 구제 불능의 완악한 죄인들이 소멸될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마지막 압제자들이 사라질 것이다. (229.8)
 그리고, 이같은 최종적인 처벌이 행해지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일곱 재앙이라는 심판을 쏟으실 것이다. (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