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0년에 쓴「철학자의 외투론」(De Pallio)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주장하기를 그리스도인은 “결코 소리치는 법정 변호인도, 재판장도, 군인도 아니다”23라고 하였다. (42.2)
 이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몬타누스주의자로 전향한 이후인 기원 211년에 저술한「병사의 화관론」(De Corona Militis)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중에서 군복무만을 취급한 유일의 글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 글을 쓰게 한 그 사건의 발생시기와 장소에 대하여 분명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으나 그 사건의 개략은 이렇다. 주둔지의 병사들이 황제의 탄생일에 선물을 받기 위해서 도열하였는데 그 중에 한 그리스도인 병사가 머리에 쓰는 군장의 하나인 화관을 손에 들고 끼여 있었다. 그는 상사로부터 화관을 머리에 쓰라는 거듭된 명령을 거부한 까닭으로 영창에 감금되었다가 참수되었다. (42.3)
 이 글의 대부분은 화환과 관의 사용에 대한 다소 진부한 토론이다. 그러나 그 책 11장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의 군복무에 대해 반대하는 자신의 관점을 간명하게 밝히고 있다. 첫째로 그는 그리스도인의 분할충성(分割忠誠)의 가능성을 명백히 거부하였다. 그리스도인은 군대의 서약24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항의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서약 위에 인간에 대한 서약을 합법적으로 추가시킬 수가 있는가? 또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은 후에도 다른 주인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가?”25라고 하였다. (43.1)
 두 번째로 그는 피 흘리지 말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강조하였다. “주님께서 검을 사용하는 자는 검으로 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도 그리스도인이 검으로 무장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26 계속하여 그는 신자들에게 부과된 문화적 분리의무(分離義務)의 급진적인 함축을 지적했다. (43.2)
“법정에 호소하는 일조차 합당히 여기지 않는 평화의 아들들이 전투에 참여해야 하는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행에 대해서도 앙갚음을 하려하지 않는 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쇠고랑을 채우고 감금시키고 처형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27
(44.1)
 그의 세 번째 논증은 병사가 군복무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강요받게되거나 부딪치게 될 일들, 예컨대 이교 사원을 위한 수직(守直), 금지된 음식, 깃발,28 암호, 시체의 화장, 그리고 병영 안에 만연되어 있던 여러 가지 비도덕적인 행동들에 관한 것이다. (44.2)
“그리스도 아닌 다른 자를 위하여 보초서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 더구나 그 일을 주일에 해야하는 데도? 그리고 이미 방치해버린 신전들 앞에서 보초를 서야하겠는가? 사도들이 금했는데 그곳에서 음식을 먹을 것인가? 대낮에는 기도에 쫓겨 도망갔던 잡신들을 밤에는 그리스도인 병사가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에 기대어 않아 지켜주어야 하는가? . . .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적대적인 군기를 들고 다녀야 되겠는가?”29
(44.3)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미「우상숭배론」에서 암시적으로 제기했던 문제를「병사의 화관론」에서 본격적으로 제기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이 현상은 그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에 파급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태의 하나라고 판단될 수 있는 일이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러한 세태에 대하여「병사의 화관론」을 통하여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자신의 이름을 빛의 병영에서 어둠의 병영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범죄”30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미 군복무를 하고 있던 사람이 나중에 신앙을 갖게 된 경우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45.1)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신앙을 받아들여 그 이름을 교회에 기재할 때 즉각 군대를 떠나든지 아니면 군대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금지된 일인, 즉 하나님께 범죄 되는 일들을 범치 않기 위하여 온갖 구차한 변명을 만들어 내던지 또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르게 결단을 내린 그 일(순교)을 하나님을 위하여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31
(45.2)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인 병사들에게 어떤 형태의 타협이나 불가피성에 대한 호소도 단호히 배척하였다. (45.3)
“군복무를 한다고 해서 죄의 면책과 순교의 면제를 약속 받은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민간인 신자도 군인이고 군인인 신자도 민간인이다. 신앙은 불가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죄를 지어야할 어떤 불가피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 . .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의 불가피성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32
(45.4)
 군복무를 반대하는 그의 입장은 “Omni ope expulero militiam”33 즉 “나는 나의 모든 힘을 다하여 군복무를 배척한다“는 주장 속에 요약되어 있다. (46.1)
 12장은 한층 더 웅변적인 논조로 전쟁의 비참함을 묘사하고 있다. (46.2)
“승리의 월계관은 나뭇잎으로 만든 것인가 사람의 시체로 만든 것인가? 월계관은 리본으로 장식했는가 아니면 무덤으로 장식했는가? 그것은 유향을 바른 것인가 아니면 . . . 아내들과 어머니들의 눈물로 얼룩진 것인가?”34
(46.3)
 이상에서 연대적인 순서를 따라 전쟁과 군복무에 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언급들을 살펴보았다. 이상과 같은 언급들을 둘러싸고 대략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제기되어 왔다.

 (1) 군복무에 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태도는 무엇인가? 「변증론」과 「병사의 화관론」 사이에는 그리스도인의 군복무에 대한 관점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 두 주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2) 「우상숭배론」과 「병사의 화관론」에 나타나 있는 바 그리스도인의 군복무에 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강경한 반대 주장의 배경에는 몬타누스주의로의 전향이 있는가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요인이 있는가?

 (3) 「병사의 화관론」에서 그가 그리스도인의 군복무를 강력히 반대한 진정한 이유는 우상숭배의 두려움인가 아니면 평화적 관심인가?

 (4) 테르툴리아누스의 군복무 반대는 당시 그리스도교회 일반의 전통적 입장이었는가 아니면 그의 개인적인 소신이었거나 교회내의 소수 입장에 불과 했는가? (46.4)
 우선 테르툴리아누스가「변증론」을 위시한 몇몇 저작들에서 전쟁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언급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와 이러한 표현들을 곧 그리스도인의 참전론으로 이해되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부터 다루어야 할 것이다. (47.1)
 주지하는 바와 같이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전의 그리스도교회는 그리스도교 사회의 안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아니고는 이교도 사회의 사회윤리나 제도를 문제삼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테르툴리아누스도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이교도의 윤리를 구별하였다. 그가 볼 때 전쟁을 통해서든 또는 사법권의 집행을 통해서든 이 세상의 외적인 평화는 결국 유혈 행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은 이 세상의 속성에 관련된 것이다. 더구나 이같은 폭력적 수단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평화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도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35 과거 역사에 있어서 세계의 정치적 평화는 바벨론, 메디아, 이집트, 앗시리아를 통하여 유지되었으며 지금은 로마를 통하여 유지되고 있다.36 그리고 이 권력을 세우신 분은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로마제국에 대한 신뢰는 곧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신뢰였다.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통치자와 군대를 위하여,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37 (47.2)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가 그리스도인들의 군복무를 허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말하기를 “이 세계는 (평화의 목적상) 이 세상의 가이사를 필요할 터이나 어떤 황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또 어떤 그리스도인도 황제가 될 수 없다”38고 하였다. 여기서 로마제국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봉사의 한계가 극명히 나타나 있다. 전쟁은 세상의 불가피성일 뿐 교회의 불가피성은 아닌 것이다. (47.3)
 그렇다면 로마 군대 안에 그리스도인 병사가 있다고 한「변증론」의 언급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충성스런 시민으로서 즐겨 군복무에 임하고 있었다는 뜻인가? 기원 170-180년 이전까지는 그리스도교 사회에 군복무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는 사실과「우상숭배론」과「병사의 화관론」에 나타난 부정적인 언급들을 미루어 볼 때,「변증론」에서 언급되는 그리스도인 병사들은 이미 군복무에 종사하다가 신앙을 받아들인 병사들이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이같은 병사들이 군대에 계속 머물러 군복무를 해도 좋은지의 문제만이 교회 안에 제기되었기 때문이다.39 (48.1)
 그는 로마 군대에 그리스도인 병사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지만 같은 글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살해하기보다는 살해당하는 쪽을 택하는”40 집단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만약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우리가 누구를 미워하겠는가? 만약 우리가 상처를 입고도 복수하는 것이 금지되었다면 누가 우리들의 손에 의해서 상처를 입어야 하겠는가”41라고 반문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병사에 대한 테르툴리아누스의 언급은 마땅히 위와 같은 진술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