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요한계시록 제11장 일곱 나팔 (제2부)
 이 시점에 2억[“2만 만”] 명의 기병대로 된 거대한 군대가 그 장면에 나타난다. 그들의 수는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인 144,000인(계 7:4)과 대조를 이룬다. 다섯째 나팔을 불 때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악마의 메뚜기들은 이제 사람들을 죽이는 거대한 군대로 자라났다. 다섯째 나팔을 불 때, 이 메뚜기들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허락받지 못했고 단지 그들을 괴롭히기만 할 수 있었다(계 9:4-6).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고 괴롭힐 수도 있다. (163.4)
 요한은 이들 악마의 기병대를 묘사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 기병대의 말들은 다섯째 나팔 때의 말들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힘은 더 강해졌다. 그 말을 탄 자들은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護心鏡)을 가졌는데, 이것들은 말들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반사된 것이었다(계 9:17). 그 말들의 모양은 무서웠다. 그 말들의 머리는 사자의 머리와 같고, 그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은 수 많은 무리의 사람을 죽였다. 구약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수단이었다(시 11:6; 겔 38:22). 그것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는 데 사용되었다(창 19:24, 28; 눅 17:29). 이것들은 최후의 심판 때에 악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사용 될 것이다(계 14:10-11; 20:10; 21:8). (164.1)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꼬리에 있다. 그 꼬리는 다섯째 나팔 때의 악마적 세력들의 꼬리를 반영한다(계 9:10). 다섯째 나팔 때에 악마적 메뚜기들의 꼬리는 전갈과 같았으나, 여섯째 나팔 때의 꼬리는 뱀과 같고, 이 세상의 거민들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괴롭히기 위해 사용된다. 뱀과 같은 꼬리로는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불과 연기와 유황을 뿜어내는 입으로는 사람들을 죽였다. 요한계시록에서 입은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전쟁에서 쓰이는 영적 무기의 상징이다(참고 계 16:13-14; 19:15, 21). 이것은 최후의 위기의 본질이 물리적 또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이것은 인류의 마음[지성]과 가슴[심령]을 위한 전쟁이다. (164.2)
 우리는 여섯째 나팔과 요한계시록 7:1-4 그리고 16:12-16 사이에 뚜렷한 평행선들이 있음을 본다. 이들 세 문단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첫째, 여섯째 나팔과 요한계시록 7:1-4은 둘 다 재앙을 제지하고 있는 네 천사를 언급하는데, 이 재앙들은 이제 막 이 땅의 거민들에게 내리려고 한다. 두 기사 모두 파괴적 세력을 “묶는” 것과 “놓아주는” 것을 언급하며, 두 기사 모두 “내가 (그들의) 수를 들으니”라는 문구를 사용한다(계 7:4; 9:16). 또한 여섯째 나팔과 요한계시록 16:12-16에서 우리는 유프라테스 강, 악마의 활동, 군사적 용어와 입이 마지막 때의 싸움에서 무기로 사용된 것을 볼수 있다. (164.3)
 여섯째 나팔과 이 두 개의 문단 사이에 있는 평행선들은 여섯째 나팔을 부는 때가 세상의 마지막 때임을 보여 준다. 요한계시록 16:12-16과 흡사하게 여섯째 나팔도 마지막 때의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사탄의 군대가 대거 집결하는 것을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7:1-4에서 네 천사는 멸망시키는 바람을 붙잡고 있다. 다섯째 나팔을 불 때에는 악마의 세력들이 이 땅의 거민들을 괴롭히는 일에 매우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힘을 제한하고 억제하고 계신다(계 9:4-6). 그러나 여섯째 나팔의 장면에서 초자연적 세력은 “무저갱의 사자”(9:11) 즉 사탄의 권세 아래서 해치는 활동을 하도록 풀려났다. (165.1)
 이와같이 여섯째 나팔을 부는 때는 확실히 마지막 때이며, 그 때의 특징은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집중적으로 준비하는 때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16:12-16에서 더 자세히 기술되었다. 여섯째 나팔의 장면은 마지막 위기의 특징이 악마들의 활동이 강열해지는 것임을 보여 준다. 복음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악마들의 세력을 대항할 힘이 없다. 그들이 회개를 할 수 없는 상황은 하나님의 중재(intercession)가곧 끝날 것과 그리스도와 사탄 및 그의 군대 사이의 마지막 전쟁을 위해 모이는 일이 있을 것에 대한 전조(前兆)이다(계 13:6-13). (165.2)
 바로 이같이 악마의 활동이 강렬해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거민들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 그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하면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계신다(계 14:6-13). 하나님의 자비는 아직도 베풀어지고 있다. 그분은 죄로 굳어진 마음들이 이 자비에 반응하여 결정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165.3)
 일곱째 나팔 재앙의 목적은 이 땅의 거민들이 너무 늦기 전에 참하나님을 인식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단의 마지막 말씀은 여섯째 나팔의 재앙 심판은 인류를 회개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히려 사람들은 계속해서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계 9:20) 마귀들을 섬긴다. 이 문단은 바벨론의 신상들에 대한 다니엘의 기록과 연관된다(단 5:23). 마귀들에게 고통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기들이 만든 신상들을 붙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마귀 숭배의 결과인 살인, 복술, 음행, 도적질 등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는다(계 9:21). 이 모든 것들은 어린양(Lamb)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특징이다(계 21:8; 22:15). (165.4)
 이 시점에서 일곱 나팔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잠시 중단된다. 일곱째 나팔이 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그 질문은 이시간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요한계시록 10:11-14에 있다. 위에서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의 막간(幕間)의 장면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을 묘사하듯이,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의 막간의 장면이 이 세상의 끝이 이를 때에 그분의 백성이 갖게 될 경험과 역할을 말해 준다. (16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