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여호사밧을 대신하여 싸워 이긴 승리가 바로 골짜기에서 이루어졌다. 여호사밧의 골짜기로 알려진 곳은 필시 이 골짜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 곳을 모르기는 아마겟돈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도 여호사밧 골짜기가 어디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432.3)
 그러나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생각을 끌어낼 수가 있다. 만일 시간이 충분하다면 사사기 4, 5장을 펴 보기 바란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이 드보라와 발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원수의 손에서 기적적으로 구원하신 또 하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특히 사사기 4장 15절5장 20~23절을 주목해 보라. 사사기 5장 21절에서 말하기를, 그 전투는 므깃도 평원을 북쪽으로 관류하는 기존 강(江)의 습지에서 치루어졌다고 했다. (432.4)
 그리고 이 경험은 므깃도 평원에 바로 인접한 작은 골짜기에서 또 한 차례의 기적적인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개입에 힘입어 단지 300명의 용사들만 데리고 그 땅을 메뚜기처럼 덮고 있던 미디안 군대를 하루 밤에 무찔러 버렸다(삿 6, 7장). (432.5)
  (432.6)
 하나의 상징으로서의 “아마겟돈”
 그렇다면 아마겟돈은 어떤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진리와 공의에 대항하는 이 세상 최후의 반란에서 진리와 공의의 하나님이, 적의 세력을 철저히 분쇄하고 그의 백성들을 온전히 보호하고 보존하실 것을 상기시키는 상징이란 말인가? (433.1)
 덧붙여 말하건데 일곱 재앙이 모두 문자적이라거나 또는 모두 상징적이라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일곱 인의 경우에도 처음 네 인, 즉 네 기사(騎士)들과 관련된 네 인은 확실하 상징적이다. 그러나 마지막 때의 징조들과 재림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여섯째 인은 확실히 문자적이다. 그래서 만일 일곱 재앙 중 처음 네 재앙을 문자적인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머지 셋, 혹은 그 중의 어느 하나는 상징적일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433.2)
 실로 음성, 번개, 대지진, 우박, 섬과 산들의 이동 등 일곱째 재앙의 표현들을 모두 문자적인 것으로 보인다. 단지 “큰 성이 세 갈래 갈라”진다고 한 표현만이 지구 최후의 대재난을 통해 사회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총칭하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33.3)
 유브라데 강(江)의 이름
 이제는 요한계시록 16장 12~16절에 기술된 여섯째 재앙의 묘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눈에 띄는 사실은, 여섯째 재앙이 주로 아마겟돈과 관련되어 있지 않고 유브라데 강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계 16:12). (433.4)
 사실 16장 12~16절에는 전혀 상이한 세 가지 활동이 기술되어 있다. 즉

 (1) 왕들이 동방에서 올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천사가 유브라데 강을 마르게 하고 있다,

 (2) 사단의 마귀들이 열국을 “아마겟돈”으로 집결시키고 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또 경고하고 있다. (433.5)
 만일 성경 주석가들이 유브라데 강이 말라붙는 사실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아마겟돈”의 의미가 스스로 드러날지 모른다. (433.6)
 수많은 주석가들은 으례 실제의 유브라데 강이 말라붙는 것으로 해석한다. 유브라데 강이 말라 버림으로써, 대군의 이동에 방해가 되는 요인이 제거됨으로써 2억에 달하는 중공의 군대가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433.7)
 유브라데(유프라테스) 강은 2,235마일이 넘는 큰 강이다. 터어키와 시리아와 이라크를 관류하는데 특히, 이라크 내의 막대한 농경지에 물을 대고 있다. 만일 가뭄이 들어 강물이 말라 버린다면 이 지역 일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대 재앙이 아닐 수 없다. (433.8)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 강물이 마르게 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현대적인 군대의 행진에 어느 정도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433.9)
 어떻든 중공의 군대가 중동에 이르려면 유브라데 강가에 도달하기 이전에, 히말라야 산맥 및 이란의 사막과 산맥 등 참으로 험난한 장애물들을 거쳐야 한다. 중공의 군대가 이같은 험로들을 다 통과했다고 할 때에, 유브라데 강물이 가장 많이 불어나 있을 때라 할지라도 과연 어느 정도나 이 군대에게 힘든 장애가 될지는 의문이다. 이 강을 도하하는 데 가장 유리한 코스가 될 시리아 지역의 유브라데 강은 그 강폭이 1마일 미만에 불과하다. 고대의 군대들도 손으로 만든 배와 가교(架橋)용 거룻배들을 이용하여 이 강을 건넜다. 1944년 6월 D 데이에 연합군은 악천후 속에서도 그 폭이 100 마일이 넘는 영국 해협을 도하하는데 성공했다. (433.10)
 상징적 해석
 이제 우리는 아마겟돈의 상징적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썼듯이 유브라데 강이 말라붙는다는 기사에 대해서도 영적인 해석을 시도해 보도록 하자. (433.11)
 일곱째 재앙 때 “세 갈래로 갈라지”“큰 성”이 바벨론을 가리킨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바벨론”이란 용어가 실제로 존재했던 바벨론 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와 관련된 어떤 것에 대한 상징이라는 데에도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434.1)
 다니엘 시대에는 유브라데 강이 바벨론 성을 관류하였다. 메데의 다리우스(Darius the Mede)가 인솔하는 고레스의 병력이 바벨론 성을 공격하던 밤에는 강물의 수위가 보통 때보다 크게 낮았다. 강의 수위가 정상적으로 낮았을 때, 공격이 감행되었던 것이다. 일부 역사가들의 증언에 의하면 침략군은, 이 때 물을 끊어 물길을 돌림으로써 이미 낮아진 수위를 더 낮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물의 수위가 크게 낮아짐으로써 침략군은 강 하상(河床)을 따라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고 성공리에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다니엘 연구 75~77). (4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