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구약이 죄와 그 무서운 자연적 결과 사이의 거의 피할 수 없는 관계를 확증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선하고” “순종적인” 사람과 여호와의 축복과의 관계를 깔끔하게 연결시키려는 우리의 시도들이 구약의 이야기들 속에서 잘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이 역설은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거의 같은 맥락에서, 신명기는 가슴을 졸이는 선택사항들을 제시한다.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입장은 그 민족의 크기나 선함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달려 있다(
신 7:7, 8).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은 만일 백성들이 그분의 명령을 지키면 이스라엘과의
“사랑의 언약을 지킬”(
12절)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공로와 상관없이 구원할 자유를 보유하신다-그러나 죄를 보복해야 하는 그분의 책임 또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울, 매우 양호한 요나단, 꾀 많고 자기를 섬기는 다윗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폴친의 말은 진리에서 멀지 않다:
“하나님에 의해 구원받은 사람의 공로나 죄는 일반적으로 그 구원과 상관이 없다”(
David, 91). 예수께서 하늘 아버지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 5:45)고 말씀하시면서 같은 현상을 지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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