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고넬료의 집에서도 방언이 필요했는가?
방언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데 언어의 장벽이 문제가 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고넬료 집에서는 왜 방언이 필요했을까? 그들끼리는 헬라어로 충분히 의사 소통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A. 우선 왜 고넬료 사건이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아는 것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이 기록된 고대 두루마리의 길이는 무게나 운반의 문제, 또한 찾아보기의 편리성 때문에 대강 10미터 정도가 최대였다. 기자들은 이 두루마리 하나 안에 자기가 쓰고 싶은 중요한 것들을 다 써 넣어야 했다. 만일 분량이 많아져서 두루마리 하나로 모자란다면 또 하나의 두루마리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것은 비용으로 보나 운반의 편리성으로 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기자들은 내용을 압축하여 중요한 사실만을 기록하려 애썼다.
B. 누가는 고넬료 이야기를 두 장에 걸쳐 기록 하고 있는데 고넬료라는 로마 백부장이 베드로를 초청하여 설교를 들었다는 사실이 사도행전에서 그렇게도 중요한가? 유대인들은, 구원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있다고 믿었다. 유대인들의 생각에 의하면 이방인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로서 구원이 없었으며 성령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나 베드로 일행은 고넬료 집에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심을 친히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고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게 된다.
이 사건은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전체가 이방인 전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서 먹고 침례를 준 것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베드로의 보고를 듣고는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
11:18)라고 말하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사에서 일대 전환을 이룬 사건이었고 이로써 세계 선교를 위한 예루살렘 교회의 마음이 준비되었다.
C. 그렇다면 고넬료 집에서 왜 방언이 필요했는지 자명해진다. 어떤 학자들은 고넬료 집에 모인 사람들은 다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히브리 방언을 쓰는 베드로를 위해 통역을 준비해 놓았을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언어의 불편이 없었는데도 방언 현상이 일어난 것은 성령 충만의 첫 번째 표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지금도 성령 충만의 외부적 증거로 방언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성령 충만의 장면이 여러번 나오지만 방언 현상이 없었던 때가 대부분이었다. 3,000명이 회심할 때도(
2:41), 5,000명이 구원을 받을 때(
4:4)도 방언은 없었다. 모인 곳이 진동하여 성령이 충만할 때도 방언은 없었다(
4:31). 그때 그 장소에서는 방언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D. 그러면 고넬료 집에서는 왜 방언이 필요했는가? 베드로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 주셨다고 믿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똑같은 성령 충만을 이방인에게도 주셨기 때문이다. 만일 고넬료 집에서 방언 현상이 없었다면 베드로 일행은 그것을 오순절과 똑같은 성령 충만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한 베드로의 보고에서도 명백해진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내리신 성령 충만의 현상이 처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때와 똑같은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11:15-17). 이것이 고넬료 집에서 방언 현상이 나타난 이유이다.
사도행전 19장에서 에베소 교회의 어떤 제자들(아마도 이방인)이 방언을 한 것도 똑 같은 설명이 적용된다.
고넬료 집과 에베소 교회에서 언어의 장벽이 심각하지 않았는데도 방언 현상이 나타난 것은 방언이 성령 충만의 첫 번째 외적 증거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때 그 장소에서 방언이 꼭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고넬료 집에서 방언 현상이 없었다면 초기교회는 그것을 성령 충만의 증거라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고 이방인들을 위해서 마음을 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많은 지장을 받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