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바울은 전도하러 안식일에 회당에 갔는가?
바울이 안식일에 강가에 간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바울이 안식일 마다 회당에 간 것이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전도를 위한 것이었다면 안식일에 회당이 없자 강가에 가서 예배를 드린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A. 성경에는 바울이 안식일에 규례대로 신실하게 회당에 갔다는 구절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20-30년 후에도 사람들이 안식일을 신실하게 지켰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고 있다. 일요일 준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에 간 것은 유대인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간 것이지 개인이 안식일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16:13에서 강가에까지 가서 안식일을 지켰다는 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빌립보에서 회당이 없자 강가에 가서 안식일을 지킨 것이야말로 바울이 진심으로 안식일을 준수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유럽(마게도니아)의 첫 성(城)인 빌립보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다. 회당은 유대인 남자 열명만 있어도 세웠기 때문에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잘 아는 바울 일행은 안식일에 유대인을 만날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 저 자신의 안식일 예배를 위해 강가의 기도처를 찾았던 것이다.
B. 바울의 안식일 준수를 부정하고 싶은 사람들은 억지를 부려 말하기를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유대인들이 강가에 모이는 습관이 있는 것을 바울이 알고 찾아갔다고 주장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해석이다. 바울은 전도할 때 그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회당에서뿐만이 아니라 저자(
17:17) 나 아레오바고(
17:22)에서도 전도하였고 안식일 뿐만 아니라 날마다 전도하였다(
17:17), 에베소에서는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전도하였다. (
19:9).
따라서 유대인에 연연하지 않고 어디서나 날마다 전도하였으므로 바울이 빌립보에도 없는 유대인을 찾아 일부러 강가에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강가에서도 유대인을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루디아는 두아디라에 사는 이방인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God fearer)라는 말은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안식일을 지키려 강가의 조용한 기도처를 찾았다고 보는 것이 가장 억지가 없는 해석이다.
C. 바울이 만일 안식일 준수자가 아니었다면 모든 유대인이 다 알았을 것이다. 바울은 우물쭈 물하는 성격이 아니다. 일요일을 지키면서도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처럼 꾸미는 위선자도 아니다. 만일 그가 일요일 예배가 옳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당장 그 확신을 전파했을 것이다. 만일 바울 이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었겠는가? 듣기는커녕 돌로 치려 했을 것이다. 자기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서 전도하러 안식일에 회당에 갔다는 것은 바울같은 사람에게 도대체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D. 바울은 자기의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갔는데(
17:3),
“규례대로” 라는 말은 단순히
“규칙적으로” 혹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라는 뜻이기보다는 자기의
“종교적 관습” 대로, 자기의
“신앙적 의무”에 따른다는 뜻이다. 예수 께서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가신 것은(
눅 4:16) 단순히 습관적으로나 혹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 아니다. 종교적인 당연한 의무로 가셨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바울도 마찬 가지이다. 그가 안식일을 규례대로 준수한 것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신자의 당연한 의무로 그렇게 한 것이다.
바울이 안식일에 규례대로 회당에 간 것은 자기는 안식일을 안 지키면서 유대인들을 만나 전도 하려고 간 것이 아니다. 그랬다가는 전도는 제쳐 두고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바울이 안식일을 신실히 지켰기 때문에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그의 말을 경청했던 것이다. 그가 제2차 전도여행 때 찾아간 빌립보에 회당이 없자 그의 일행은 조용한 강가에서 안식일 예배를 드리기 원했다. 그는 참된 안식일 준수자였으며 유대인들도 그것을 인정했다. 그렇기 때문에 회당에서 그의 말씀 전파가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