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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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성경절
문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각각 누구이며 그들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협력관계인가 아니면 적대관계인가? 예수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해석
 A.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를 움직이던 지도적인 두 그룹은 사두개인들(Sadducees)과 바리새인들(Pharisees)이었다. 엣세네파(Essenes)가 있었지만 그들은 성전 제사를 거부하고 세상을 떠나 사는 은둔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으며 신약에도 나와 있지 않다. 과격한 민족주의자들인 열심당(Zealots)과 헤롯당들이 있었지만 소수였고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에 반하여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신약에 자주 등장하며 예수님과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사람들도 그들이었으며 산헤드린 공회를 구성하여 유대민족을 지배한 사람들도 그들이 었다.


 B.

 바리새인의 뜻은 분리하다 혹은 구분하다. (to separate)라는 뜻의 히브리어 파라쉬 (paraš)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부정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하였으며, 일반 대중인 그 땅의 부정한 백성들(am harares, the people of the land)로부터 자신들을 분리하였고, 정치의 오염으로부터도 자신들을 분리했다. 바리새파는 BC 2세기경 경건파였던 하시딤 (Hasidim)에서 유래한다고 여겨진다. 요한 히르카누스(John Hyncanus) 왕 때부터 생긴 권력자들의 불화 때문에 사두개파와의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 이어서 로마의 통치와 헤롯 왕조 밑에서도 그들의 정치적인 세력은 계속 억제를 당하였 고 그들은 주로 국민들에게 광범한 종교적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리새인들은 랍비 요한 벤 작카 이(Johann ben Zakkai)를 중심으로 얌니아 (Jamnia)에 정착하여 활동하였으며 요세푸스는 그 당시 바리새인의 수가 약 6,000명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C.

 귀족들이나 상류 계층이었던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바리새인들은 보통 중산층의 사람들이었으며 대개가 상업에 종사하였다. 바리새인들이라고 다 율법의 전문가들이 아니었으며 율법의 해석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학자인 서기관들을 전적으로 의지하였다. 서기관들은 대부분 바리새 파사람들이었다. 바리새파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은 엄격한 신청 절차를 밟고 바리새파의 모든 규약과 전통을 순종하겠다는 서약을 해야만 했다. 그들은 비교적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았다.


 D.

 바리새파 신조의 두 기둥은 율법(Torah)과 전승(Tradition)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정확한 해석에 주력하였으며 이런 바리새파 학자들의 노력으로 방대한 분량의 랍비 문헌이 이루어졌다. 그들 예배의 중심지는 회당이었고 교리에는 진보적이어서 부활과 심판 같은 교리들을 믿고 받아들였다. 바울 당시 바리새파의 두 지도적 학파는 샴마이(Shammai)학파와 힐렐(Hillel)학파였으며 바울은 힐렐 학파의 거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


 E.

 바리새파라는 말은 신약에 100번 정도나 언급되어 있다. 신약에서는 바리새파가 위선자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으며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예수님의 책망을 듣기도 했다. 그들은 그들의 위선으로 끊임없이 예수를 괴롭혔으나 많은 바리새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예수께서도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아 음식을 잡수시기도 하였다(눅 7:36-50).


 F.

 사두개파에 대해서는 신약과 그들과 적대 적 관계에 있었던 바리새파의 기록들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들은 귀족계급이었고 부유했으며 헬라문화에 대해서 개방적이었고 지배권력과 협력 관계에 있었다. 그들은 또한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고 대제사장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보수적이었으며 구약 중에서 모세오경만 받아들여 엄격히 적용하였다. 이 사두개파에 대해서는 요세푸스의 기록밖에 없으며 요세푸스도 이 분파의 특성에 대해서 묘사 해 주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사두개라는 이름은 “의롭다” 라는 히브리어 차디크(sadig)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다윗왕 당시의 대제사장 사독에서 나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아마도 사두개파들이 유대인들에게 존 경받는 사독 제사장과 자신들을 연결시킴으로 대제사장의 정통성을 인정받으려고 했을 것이다. 사두개파들은 히르카누스 왕 시대에 바리새인들이 핍박을 당하자 번영하기 시작했다.


 G.

 사두개인들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보수적이었고 바리새인들의 교리가 타협적이라고 거부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만 받아들이고 바리새인들의 구전(oral law)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두개파들은 바리새파의 규약들을 무효로 선언하고 모세의 율법에 없는 것이라고 배척했다. 사실상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 즉 오경만 권위가 있는 것으로 인정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2:32에서 사두개인들이 부활에 관해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더 확실한 이사야서나 욥기가 아니라 모세오경에서 인용하여 대답하셨던 것이다(출 3:6).

 그들은 또한 부활을 믿지 않았다(23:8). 사두개인들이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신약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막 12:28; 행 23:8). 그들은 영혼은 육신과 함께 사멸하는 것이므로 사후에 어떤 보상이나 벌도 받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런 현세주의적 견해는 사두개인들이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사두개인들은 또한 천사나 영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23:8) 없다고 믿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두개인들이 모세오경에 나오는 천사의 교리까지 부정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천사나 영의 개념은 특히 신구 약 중간시대에 발전한 교리들로서,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진리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두개인들은 이런 교리들을 배척함으로써 자기들의 순수함을 강조하려고 했을 것이다.


 H.

 사두개파라는 명칭은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오는데, 제사장과 연관되어 나온다. 사두개파는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는 그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그들의 지도력과 기득권을 위협하게 되자 바리새인들과 합세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된다. 침례자 요한은 사두개인들을 바리새인들과 함께 “독사의 자식들” (마 3:7)이라고 꾸짖고 있으며, 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하늘로서 오는 표적” (마 16:1)을 보여 줄 것을 요청했고, 예수께서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 16:6)고 권면하시고 있다. 복음서에 나오는 사두개파에 대한 가장 확실한 사건은 그들이 부활에 대하여 예수께 질문하는 장면이다. 사두개파는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교묘한 질문을 고안해 냈다(마 22:23-33; 막 12:18-27; 눅 20:27, 28).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이 인정하는 오경을 인용하여 그 문제에 대답하셨다.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의 설교 때문에 사두개인들은 크게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사두개인들은 제자들이 “예수를 들 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4:2) 제자들을 잡아 가두었다. 사도행전 23 장에서 공회 앞에 끌려온 바울은 산헤드린 공의회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부활 문제를 들고 나와 재치 있게 산헤드린 의 탄핵을 피했다.

요약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를 이끌어 가던 두 그룹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해석의 전문가임을 자처하였고 모든 유전을 지켰으며 백성들 사이에서 광범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사두개인들은 귀족계급이었고 부유했으며 정치권력과 밀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바리새인들과 합세하여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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