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말하는 복음이란 어떤 것인가? 복음을 전한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전하는 것일까? 복음의 정의는 무엇이며 복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복음의 능력은 어디서 나오며 복음의 결과는 어떤 것이고 그 효능은 무엇인가?
A. 복음은 신약의 중심이다. 예수께서 이 지상에 오신 목적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눅 4:43). 그래서 그가 가르치신 기별의 핵심도 복음이었다(
마 4:23; 9:35; 11:5; 막 1:14) 그리고 그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세상 끝이 올 것이었다(
마 24:14; 막 13:10).
복음(
euaggelion)이란 말은 헬라어 유(
eu)와 앙겔리아(
aggelia)의 합성어로서 좋은 소식 혹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이다. 무엇이 기 쁜 소식이며 무엇이 좋은 소식인가?
복음이란 말은 신약에 110번 나오는데 공관복음서에 20번, 사도행전에 11번, 바울 서신에 74번, 베드로전서에 4번, 요한계시록에 1번 나타난 것이 그것이다. 수적으로 보아도 바울이 압도적으로 복음이란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바울의 기별의 핵심도 복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
1:1) 입은 사도로 생각했다. 그의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
행 20:24)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바울 신학의 핵심에는 복음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울은 모든 신앙의 중요한 문제들의 해답을 복음에서 얻었다.
B. 바울은 복음을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 (
1:2)이라고 정의한다. 아들이야말로 복음의 내용이고 열쇠이며 모든 것이다. 아들을 벗어나면 복음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아들이 없는 설교, 아들이 없는 전도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들을 제외한 어떤 것도 복음이 아니다. 복음에 대해 논하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 (
요 3:36) 하는 이유이다. 아들에 관한 약속이라면 무슨 약속을 말하는 것인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 (
1:3)에서 나시겠다는 약속이다. 신성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비참한 육신이 되신다는 성육신의 약속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성육신하신 아들이 우리를 위해 죽으리라는 약속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 (
사 53:5었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부활하시리라는 약속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리라는 약속이다 (
1:4).
C.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dikaiosuna)가 나타나 있다(
1:17). 하나님의 의가 바로 복음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다.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은 하나님의 의이지 결코 인간의 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구원과 완전을 논할 때 사람을 바라보기 쉽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의는 단 하나도 복음에 섞이지 않았다. 성경에서 의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의이다. 타락 이후에는 인간의 의(義)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란 그러면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 (
3:24)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로마서는 설명한다.
D.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1:16), 복음에는 사람의 능력이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다. 복음의 강력함과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복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거듭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성화되는 사람도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완전케 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부흥하는 교회도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 할 것이 없”(
갈 6:14)기 때문이다. 자기의 능력으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 안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 결과에 대하여 실망할 것도 없다. 사람은 단지 복음을 전했을 뿐이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 15:58).
E.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약속이 복음의 정의이고 복음의 내용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라면, 복음의 결과는 구원이다(
1:16), 복음에만 구원이 있다(
1:16). 구원은 어떤 행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믿느냐 거절 하느냐에 달려 있다. 복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있고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다(
1:18).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어떤 장소나 사람이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어떤 특별한 설교가 구원을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구원은 복음에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열 번째 재앙에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을 믿고 피를 바른 사람은 그 즉시 구원을 받은 사람이다.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 천사가 지나간 것을 보고서야 안심하겠다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결과는 구원이다. 그리고 그 구원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주어졌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나의 구주이다.
F. 복음의 효능은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
1:17). 믿음에서 믿음으로라는 구절은 등위접 속사인
카이(
kai)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에크(
ek)와
에이스(
eis)(즉 영어의 from- to-)로 연결되어 있어서 처음 믿음에서 더 높은 믿음으로의 발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성화의 단계를 의미하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복음 속에 거하는 사람은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화의 과정 속에 살게 된다. 개인의 결심이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이 돌감람나무인 우리를 참감람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접붙여 주는 것을 구원이라 부를 수 있다(
11:17, 18). 이제 돌감람나무 가지는 돌 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돌감람나무 가지로서는 죽었다. 그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 참감람나무 가지가 되어 거듭나게 되었다. 여기서 참감람나무의 역할이 끝나고 이제는 가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참감람나무는 계속해서 뿌리의 진액과 영양분을 흘려보내고 그 가지가 참감람나무의 가지로서 건강하게 자라나게 한다. 그것까지도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4월의 가지에서 5월의 가지로 그리고 열매를 맺는 10월의 가지로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자라도록 한다. 이것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말씀의 뜻이다.
그렇다면 접붙임을 받은 가지가 할 일은 무엇인가? 비록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나 그 가지 속에는 아직도 돌감람나무의 속성들이 남아 있다. 그 속성들은 끝임없이 참감람나무의 열매가 맺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래서 가지 속에서 무서운 싸움이 일어난다. 두 속성의 싸움이다. 선과 악의 싸움이다. 이것이
로마서 7장의 싸움이다. 회개가 깊어갈수록 죄된 본성이 뚜렷하게 보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는 부르 짖음이 발해진다. 그러나 이 싸움조차도 가지가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한 승리는 정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가지가 접붙임을 받았으나 참감람나무의 수액을 계속해서 잘 받아들이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뿌리와의 관계가 부실하면 가지는 마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즉시 회복되지 않는 한 어느 정도 그 상태가 진척되면 그 가지는 말라서 죽은 가지가 되고 만다. 어떤 가지는 죽자마자 떨어져 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가지는 죽은 채로 여전히 나무에 붙어 있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계속하여 복음 속에 즉 참감람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을
“아들에 관한 성경의 약속”이라고 정의했으며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의 의”이고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규정했다. 복음의 결과는 우리의
“구원”이고 복음의 효능은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는 성화다. 우리가 이런 복음에 대한 바울의 기록을 분석하고 연구한 후에 얻는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아들이야말로 복음의 내용이고 열쇠며 모든 것이다. 아들을 벗어나면 복음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러므로 아들이 들어 있지 않은 설교, 아들이 없는 전도는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아들이 들어 있지 않은 어떤 것도 복음이 아니다. 복음에 대해 말하고 복음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복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의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부흥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어떤 능력도 의도 복음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다. 사람의 능력으로 복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자체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능력과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