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의인은 하나도 없는가? 그렇다면 욥이나 노아나 다니엘은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가?
A. 죄가 인간에게 얼마나 보편적인지 바울은 통절하게 깨닫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 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 (
3:10)라고 선언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 (
3:23)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 선을 행 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
3:10-12)고 바울은 탄식한다. 인간의 절망적 모습이다. 죄가 이렇게 인간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며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B. 죄에 대한 보편적 오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죄는 선택이며 선택하지 않으면 죄를 안 지을 수 있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선택하지 않으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죄를 선택하지 않아서 죄 없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자는 주장이다.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이 죄를 이루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죄라는 것이 정말 그런 것이라면 수도원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제일 의인일 것이다.
죄는 선택이 아니라 관계다. 구원이 관계인 것처럼 죄도 행위가 아니라 관계다. 관계를 거절하는 것이 죄요 그 관계가 깨져 버린 것이 불의요 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관계가 깨졌을 때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 존재 자체가 죄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후에 아담의 후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으로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다.
C.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은 죄로 깨어져 버린 언약 안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보편적 죄악성을 가리키신 말씀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죄하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다. 이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 운 피조물이라” (
고후 5:17)는 간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은 율법 아래서 정죄를 받고 있는 인간의 보편적인 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가 없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우리를 사시어 우리의 모든 죄 값을 갚으시자 우리는 의롭게 되고 일약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