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새로운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인 의문의 묵은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사 제도와 관련된 의문의 율법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율법 전체를 의미하는가?
A. 바울은 여기서 새 것과 묵은 것, 의문(儀 文)과 영(靈)을 대치시키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란 율법의 조문을 말하는 것으로 헬라어로는
그람마토스(
grammatos)라고 하며 바울에게는 언제나 묵은 율법의 법조문을 가리키는 말이다. (
롬 2:29; 고후 3:6). 영원한 율법이 왜 묵었는가?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제는 영의 새로운 것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기존의 것은 묵은 것이 되기 마련이다.
B. 바울은 여기서 결혼 관계를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말한다. 죽은 것은 율법이 아니라 사실은 율법과의 관계이다. 한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와 굳게 결혼 약속을 했다.
그러나 남자가 결혼을 준비하러 여행을 떠난 사이 이 여인은 그 약속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었다. 결혼 약속은 깨졌다. 모든 것이 끝 났다. 결혼 약속은 무효가 되고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남자는 이 여인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보다 힘든 고통을 무릅쓰고 그 여자의 모든 불의를 용서하고 아내로 받아들이겠다는 새로운 언약을 발표했다. 그래서 이 불의한 여자는 은혜로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지금부터 이 여자가 사는 것은 옛날의 결혼 약속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폐기되고 낡은 법 조문이 되었다. 순결을 유지하고 결혼하여 영원히 사랑하자는 그 법이나 약속의 내용 자체가 무효가 된 것은 아니다. 그 내용이나 사랑의 약속은 지금도 필요하고 유효하다.
그러나 법적 관계는 그 여인의 죄 때문에 깨져 버리고 쓸모 없는 묵은 법조문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이 여인이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 사는 것은 무효가 된 처음의 결혼 약속에 얽매여서가 아니다. 그 여인은 그것에 대해서는 죽었다. 지금은 남편의 전적인 용서에 의지해서 산다. 지금 그 여인이 이 남편의 아내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은 깨져 버린 의문의 묵은 법 때문이 아니라 남편의 은혜 때문이다. 남편이 이 여인을 사랑하는 것은 여인이 법을 잘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인은 남편의 사랑에 감격하고 순종하며 산다.
C.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타락하여 깨어 버린 묵은 법조문에 매달려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 법조문은 우리를 보증해 주거나 구원해 주지 못 한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새로운 구원을 확신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후 5:17). 지금 우리가 사는 것은 묵은 법조문을 들추어 변명을 늘어놓거나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 보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십자가의 피를 바라보며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것이다.
의문의 묵은 것이란 단지 제사 제도의 율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깨져 버린 낡은 옛 언약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그런 묵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주신 새로운 법, 새로운 질서, 새로운 영적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