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구원과 양자됨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A. 로마서 5장부터 시작된 구속받은 사람들의 모든 특권은,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생겨나는 새로운 관계는 마지막으로 양자 됨(
huiothesia)이라는 개념으로 결론 지어진다. 칭의, 구원, 완전, 화목, 성화 같은 모든 구원의 개념들이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양자 됨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이다. 양자 됨은 하나님께서 먼저 계획하신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
갈 4:5) 하심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양자가 되기 위하여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울은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B. 양자는 급격하고도 완전한 신분의 변화를 의미한다. 양자는 새로운 가족 관계와 질서에 속하며 이전 가족 관계에서 가졌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상실 내지는 면제받고 새로운 관계에서의 의무를 부여받고 특권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고 아원에서 양자로 입양된 아이는 고아원의 모든 규칙과 의무에서 해방되고 모든 부채에서 자유롭게 된다. 이미 그의 새로운 부모가 갚았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호적을 얻고 새로운 신분을 취득 한다. 가족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신분상의 변화이다.
C.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기회가 열려 있다. 누구든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요 1:12)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믿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전적으로 다른 관계, 다른 신분이 시작된다. 이것이 구원이고, 완전이며, 거듭남이다. 그 이전 관계에 대해서는 전적인 죽음이요. 새로운 호적을 갖는 거듭남이요, 고아에서 아들이 되는 구원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완전한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옛날 고아원의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대고 옛날의 잘못들을 들추어내도 아버지가 인정하는 한 그는 완전한 자녀다. 그래서
로마서 8장의 외침은 양자가 된 고아의 승리의 노래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
8:33, 34). 그는 이제 아들로서의 권리를 즐길 자유가 있고 아들로서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가 고아 때의 나쁜 습관들을 기꺼이 끊어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 것을 결심하는 것은 아들 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이미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D. 그러나 양자에게는 아직도 옛 사람(고아 시절)과의 싸움이 남아 있다. 때로는 고아의 근성이 불끈 솟아오르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제 맘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나타나기도 하며 죄된 생활에 대한 미련이 그를 어지럽힌다. 그는 그것들과 싸운다. 그리고 그는 승리하며 자란다. 그 싸움과 자라남의 전 과정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른다. 그것은 어쩌면 일생이 걸리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 미 자녀로서의 승리는 보장되었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다.
E. 우리가 옛 사람에서 벗어나 양자가 되었다 는 것을 누가 보증하시는가? 성령께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
8:16) 하시고,
“약속의 성령으로” 우리를 인치시며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시는 것이다.
로마서에서 구원의 신학은 양자의 신학으로 결론지어진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속죄함을 받은 사람들의 새로운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갔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성령께서 친히 그것을 증거하시고 우리 기업의 보증인이 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