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요 완성이라면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율법을 준수할 필요가 없는가?
“율법의 마침”이라는 말에서
“마침”의 참뜻은 무엇일까?
A. 만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면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지 율법이 필요 없다는 주장이 이 구절 때문에 나온다. 과연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율법을 용도 폐기하셨는가? 이 구절은 수 세기 동안 많은 논란이 있어 왔으며 아직도 전혀 반대의 의미로 해석되곤 하는 난해절이다. 그러나 이 구절의 올바른 해석은 바울 신학에서 그리스도와 율법과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마침” 이라는 헬라어는
텔로스(
telos)이며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의미는 성취, 완성, 결과, 완료, 마지막, 끝, 정지, 목표, 의무, 세금, 군대 등이다. 이 모든 뜻이 다 신약에 나오지는 않는다. 신약의 용법을 참고하여 텔로스의 뜻을 정리하면 다음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goal, aim)이 되셨다.
(2)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성취(fulfillment)가 되셨다.
(3)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끝(termination)이 되셨다.
B. 최근의 여러 학자들은 (3)의 해석, 즉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끝이라는 설명을 지지하고 있다. (Headlam, Lietzmann, Käsemann, Sanday. Dodd). 구원의 방법으로서 율법의 역할은 끝나고 이제는 그리스도가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옛 질서는 끝나고 이제는 새로운 질서가 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간단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와 율법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율법도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주신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제사 제도처럼 끝나 버리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인가? 율법이란 것이 이제는 필요없으며 폐지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율법이 파괴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plérsai) 하려 함이로라” (
마 5:17)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그래서 일부의 학자들은 (3)과 (2), 혹은 (3) 과 (1), (2)를 결합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즉
“그리스도는 율법을 최고의 정점에 올려 놓아 성취 하셨으나 동시에 그것을 정지시켰다”는 것이다. (Leonhardt), 한편 배러트(Barrett)는 여러 설들을 조화시키면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을 선언했으나 그것은 율법을 파괴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실현시킴으로써” 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어떻게 설명해도 율법의 정지나 끝이라는 개념이 들어있기 때문에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가 율법을 폐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어떤 구절도 없기 때문이다.
C. 보수적인 학자들과 교단들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텔로스가 되신다는 뜻을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을 끝내셨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설명도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는 율법이 구원의 수단이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율법이 구원의 수단으로 주어진 일이 없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나 오직 단 한 가지 구원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한 구원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하나의 설명은
로마서 9장과 10장이 유대인들이 율법의 기능을 오해하여 율법의 준수를 구원의 방법으로 생각하였고 그로 인해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율법의 마침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심으로 유대인들의 율법의 기능에 대한 오해가 끝났다고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설명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D. 그러므로
텔로스의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목적(2)이며 그 성취(1)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제일 문제가 없다고 본다. 거기에는 다음 과 같은 확실한 이유가 있다.
(1) 위에 설명한 바와 같이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거나 파괴하였다고 우리는 주장할 수 없다. 그것을 암시하는 성경절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율법의 주인께서 스스로 율법을 파괴하셨다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존중히 여기시어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것이다.
(2) 그리스도께서 직접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
마 5:17)고 말씀하시어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이 율법의 파괴나 끝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임을 선언하셨다.
(3) 유대인들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의를 성취하려 하였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였다(
9:32). 그들은 하나님께 열성이 있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는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 (
10:3)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었고 열성도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텔로스임을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바로 그들이 그렇게 열렬히 추구했던 율법의 목표이고 지향점이며 그 진정한 의미요 본질임을 몰랐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 율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였다. 율법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어졌다. 십자가야말로 율법의 요구를 하나님의 아들이 그 생명을 바쳐 이루신 일이며 율법을 최고로 높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10:4에서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마침(telos)이 되신다고 바울이 말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끝내졌다거나 혹은 율법에 대한 유대인의 오해, 즉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에 대한 오해를 끝내신 것을 말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텔로스, 즉 목적이며 완성이 되셔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이루셨고 그러므로 율법을 최고로 높이셨다고 해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