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이방인(異邦人)의 충만한 수란 무엇인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충만한 수가 이를 때까지 이스라엘은 계속 완악해지는가?
A.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그 다음 절의
“온 이스라엘” 과 관련지어 생각해야 한다. 만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모든 이방인들”을 가리키고
“온 이스라엘” 이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말한다면 바울은 여기서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다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 구원론” (universal salvation)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편지서 어디에서도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두가 함께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 일이 없다. 오히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그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기가 나게 하여 그들 중
“얼마를 구원 하려 함” (
11:14)이라고 말하여 모두가 구원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무엇일까?
B.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과연 모든 이방인들을 가리키는가 혹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선택받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첫 번째 학설(Denny. Godet)은 모든 이방인이 남김없이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이기 때 문에 만인 구원론이며 바울의 사상에 위배된다.
두 번째 학설(Meyer, Bruce, Hendrilksen)이 합리적이다.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유대인 전체 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이방인의 충만한 수”도 이방인 모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많은 주석들이
로마서 11:12의 유대인의 충만을 이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연결시키려고 하지만
11:2의 충만함은
“넘어짐”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충만함이기 때문에
“충만한 수” 와는 다른 개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들어 있는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이스라엘은 완악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얼 마인지는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이방인 모두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 수가 찰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보편 구원론”이 되는데 성경의 기본 사상과 어긋난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하나님께서 만족하시는 충만한 수를 의미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