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치병(治病)을 중사하는 교화들은 이 성경절을 사용하여 치병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우리 병을 다 짊어지셨으니 우리는 병에 걸릴 필요가 없으며, 걸렸더라도 다 나아야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얘수께서 모든 병을 다 짊어지시고 우리는 이제 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고 또 마땅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A. 모든 병은 사단에게서 오며 반드시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은 이 성경절을 그 이론의 근거로 삼고 있다. 예수께서 모든 병을 다 짊어지셨으니 우리가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에는 인간의 영과 육 전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병에 대한 치료도 마땅히 십자가의 은총 속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짊어지신 구주께서는 우리 병도 짊어지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병의 치료는 자동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B. 이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 옳기도 하다. 그러나 구원에는 반드시 병의 치료도 따라야 한다고 편협하게 주장할 경우, 고침을 받지 못하거나 병으로 죽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용서받지 못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고 말기 때문에 절망과 자포자기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 이 죄악 세상에는 의인에게도 고난이 많으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귀중히 여기는 죽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시 116:15).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도 병과 고통 속에서 살아갔다(
왕하 13:14; 딤전 5:23).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로 우리 모든 병을 짊어지시고 우리는 짊어질 필요가 없다면, 디모데의 잦은 발병(
딤전 5:23)은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예수를 자주 떠났기 때문인가? 하나님이 자주 저주하시기 때문인가? 사단이 자주 그를 정복하기 때문인가?
C. 그렇다면 예수께서 병을 짊어지셨다는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이 말씀은 분명히
이사야 53:4의 인용이다.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이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고난을 당하시는 메시야를 영적으로 예언한 것이었다. 마태는 여기서 좀 더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담당하신 것을 묘사하고 있다.
“연약함”과
“병”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이사야의 예언과 마태의 글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의 치유 능력은 단순히 어떤 병적 현상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죄로부터의 구원과 해방을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하”고
“짊어지”는 것은 우리의 질병이 그대로 예수께로
“전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수께서 질병과 연약함의 원인이 되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뿐이다.
D.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지만 단순히 병을 환자 대신 짊어지는 방법으로 고쳐주신 일은 없었다. 그분은 환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막 2:5), 먼저 죄사함을 받아 죄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셨으며(
막 2:5), 그리고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요 5:14)고 당부하셨다. 예수 자신도 모든 것을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맡기셨다. 죽음을 앞에 두신 순간에도 그분은
“나의 원대로 마읍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26:39)라고 기도하셨다. 그분은 한 번도 하나님을 강제하지 않으셨으며 자기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변경시키려고 시도하신 일도 없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당연한 권리처럼 하나님께 치료를 요구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순종과 회개 그리고 겸비의 태도가 병 낫기를 갈구하는 사람들과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연익과 병을 짊어지셨다는 것은, 우리의 질병이 모두 그에게 전가되어 우리병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반드시 물러가야 한다는 피상적인 말이 아니라 예수께서 연약과 병의 근원이 되는 우리의 죄를 지셨다는 구속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즉 구속의 은혜 속에는 죄의 용서와 함께 넓은 의미의 육신의 치료도 포함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여 십자가가 모든 병을 치료해 주는 것처럼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모본처럼 겸손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