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자기 마음대로 안식일을 정할 수 있는가?
이 성경절은 피상적으로 들으면 오해하기 쉽다.
“모든 날이 똑같은데 가릴 것 뭐 있느냐 각각 자기 마음대로 정하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것을 안식일에 적용시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안식일에 예배드리면 어떻고 일요일에 예배드리면 어떤가? 다 똑같은 날들이니 각각 자기 마음에 드는 날을 골라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색해진다. 이 말씀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A. 우선 이런 말씀을 하게 된
로마서 14장의 배경을 생각해 보는 것이 순서다. 무슨 말이든 그 말을 하게 된 배경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14장에는
“믿음이 연약한 자” 와
“강한 자” 라는 표현이 있는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14장의 배경도 잘 모르고 채소를 먹기를 원하거나 안식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로 생각하고, 그들을 율법주의자며 그리스도인 자유의 걸림돌로 몰아 부친다. 바울이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
14:2) 또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
14:5)라고 했을 때 사도는 과연 무엇을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을까?
B. 로마에는 일찍부터 유대인 사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BC 63년 폼페이우스(Pompey) 장군이 많은 유대인들을 전리품으로 로마에 끌고 갔는데 그들 대부분은 나중에 자유인이 되어 로마에 정착하였다. 오순절(AD 31) 이후 그리스도를 소개 받은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로 돌아가서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여 로마 교회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글라우디오(Claudius) 황제(AD 41-54)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자 잠시 동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교회를 지키게 되었다(
행 18:2 참조).
오래지 않아 유대인들이 돌아오자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맹목적으로 구원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례도 절기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구원이 있을까 그들은 의심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눈으로 보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야말로 답답하고 얽매인 사람들이었다. 할례를 포함한 온갖 규례와 율법, 갖가지 절기들 그리고 가리는 음식들이 그들을 숨막히게 했다. 살아온 문화적 배경과 종교 및 생활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 사이의 갈등은 심각했을 것이다.
C. 그렇다면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도 있으며 혹은 특정한 날을 기념하는 것을 반대하고 모든 날이 다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 하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여기에 안식일도 들어가는가?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마음대 로 하라는 의미인가? 혹자는 이 성경절을 안식일 폐지의 근거로 사용하는데 그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창세기 2:2에 처음으로 언급되는 제7일 안식일은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할 변함없이 중요한 계명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것으로 알았지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 안식일은 사람이 타락하기 전에 축복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폐지되는 모형이 아니며
“기억하라” 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사람이 임의대로 결정할 사항도 아니었다. 바울 자신도 안식일을 귀하게 여기고 준수하였다. 그는 안식일마다 규례대로 회당에 가서 안식일을 지켰다. 빌립보에서는 회당이 없자 강가에까지 가서 안식일을 기억하였다(
행 16:13). 만일 바울이 안식일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더라면 바울은 그것 때문에 전도도 할 수 없고 돌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D. 그렇다면 각각 마음에 확정하라는, 다시 말해서 기억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바울이 말하는
“날”은 무슨 날인가? 유대인들은 여섯 개의 연중 절기와 거기에 따른 일곱 개의 절기 안식일을 가지고 있었다(
레 23:4-37). 이 절기와 날들은 유대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제사 제도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 절기와 날들은 구속제도의 그림자로서 원형이신 그리스도가 오시자 필요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워낙 뿌리깊은 이 관습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다음에도 이 절기와 날들을 기념하였고 그것은 의미가 없다뿐이지 그들의 전통적인 명절이기 때문에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그날들의 준수를 다른 사람 특별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조건으로 강요하는 데 있었다.
E. 누가
“연약한 자” (the weak)이고 누가
“강 한 자” (the strong)인가? 피상적으로 생각하여 이런 관습이나 우상숭배에 매이는 유대인들이 약한 자이고 이방인 신자들이 강한 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대인인 바울이 강한 자에 들어 있는 것을 봐서(
15:1) 그렇게 민족(ethnic group)으 로 단순히 가를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약한 자란 제물 먹는 것에 민감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날들을 지키는 것을 중히 여겨 거기에 매달리기도 하는 예민한 신자들을 의미한다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그룹들을 바울은 책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누가 강한 자인가? 우상 제물이나 절기 준수 같은 문제에 자신은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문화나 관습적인 차이 때문에 그런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형제들을 업신여기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
14:3),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
15:1) 하는 사람이다.
로마서 14장은 아무것이나 먹고 살라는 말이거나 아무 날이나 안식일로 지켜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마음에 확정하라는
“날”은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신 제7일 안식일이 아니라 절기와 절기 안식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 이후에 자연히 그 의미가 사라졌지만 어떤 신자가 관습상 절기들을 기념한다 하더라도 정죄까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