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죽은 자들이 죽은 자를 장사한다는 말의 의미는?
여기서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죽은 자들이 어떻게 장사를 지내는가? 만일 죽은 자들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는 것이 되는가? 영적으로 죽지 않는 사람은 장례를 치르면 안 되는가?
A. 이 말씀은 제자 중 하나가 예수를 따르기 전에 먼저 부친을 장사하게 해달라는 요청에 대한 답으로 주어졌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말라는 말인가? 잘못 이해하면 기독교를 비윤리적인 종교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부모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한 사람을 책망하신 일도 있다(
15:1-6).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B.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말씀에서 죽은 자들은 죽은 자를 장사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 나오는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즉 불신자들에게 죽은 자의 장례를 맡기라는 말씀이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아들이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겠다는데 막으신 것이 문제다. 장례는 중요한 것이고 더구나 장례에서 아들의 역할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C. 또 다른 해석은,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삶에서 무엇이 우선 순위인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부친의 장례는 불신자인 친척들도 얼마든지 치를 수 있다. 그러나 영적인 기회는 한번 가버리면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예수께서 이미
“건너가기를”(
8:18) 명하셨고, 배는 곧 항구를 떠날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만일 예수를 좇을 생각이라면 즉시 합류해야지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배가 떠나버리면 다시 찾아 합류하기란 힘들기 때문에 장례까지도 불신자인 친척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의 설명은, 예수의
“나를 좇으라”는 명령은 신적인 명령이어서 이 세상의 어떤 돌발 사정으로도 무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르심을 가볍게 생각하는 그 제자에게 이 사실을 깊이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영적인 관계는 이 세상 어떤 관계보다도 뛰어난 것이어서 가족 관계라 할지라도 영적 관계가 우선이라는 것을 이 사람에게 가르쳐 주시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지 말고 나를 따르라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D. 한 가지 가능하고 합리적인 생각은 아버지의 장사를 꼭 장례식으로만 보지 말고 죽음으로 보자는 것이다. 즉 미래로 보자는 것이다. 이 사람의 아버지는 중병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혹은 노쇠해서 장사할 날이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가시면 아예 다 정리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이다. 우리말에도 “불교를 믿으시는 부모님 장사나 끝난 다음에 교회에 나가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장례식이 끝난 다음에 나오겠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교회에 나오겠다는 말이다. 이 대화를 다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주여, 저에게는 연로하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이 돌아가시어 장사를 치른 다음에야 자유롭게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의의 결단은 시급하고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때로는 가족까지도 희생한다. 믿지 않는 너희 가족들이 아버지를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지금 나를 따르라.”
부친의 장사를 실제 장례식으로 해석한다면 애수께서는 부친의 장례식 참석도 허락하지 않으시는 반윤리적인 분으로 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좋은 해석은, 장사를 장례식이 아니라 죽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직 죽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 장사를 치른 후에 따르겠다는 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죽을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불신자들)이 돌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