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마치 방언을 찬성하는 것같은 표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왜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셨는가? 바울이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잘 한다는 말은 그가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말을 한다는 것인가? 왜 방언하기를 금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A. 고린도전서 14장에는 방언을 금하는 장 같으면서도 또 방언을 허락하는 것으로 오해하게 하는 세 구절이 있다. 왜 그런 말들이 들어 있으며 그 뜻은 무엇일까?
첫째로,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바울은 성령의 은사인 방언 자체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성령의 은사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가지고 있으면 좋은 것이다. 바울은 오순절의 방언 은사 같은 성령의 선물은 누구든지 가지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이 변질되어 교회를 괴롭히기 때문에 방언 대신 예언을 하라는 것이다.
B. “내가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오순절의 방언과 고린도 교회의 방언을 언어상으로는 구분하지 않고 있다. 고린도 교회의 방언 현상은 복합적인 것이어서 어느 한 가지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 종족의 언어들을 구사하면서 방언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울은 그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재능을 교회 안에서 무질서하게 사용한 일이 없었고 그래서 이렇게 권면할 수 있으니 감사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방언의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같으면 방언의 무질서한 사용을 금하는 바울의 의도를 시기심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지만 바울이 더 여러 종류의 방언을 말하기 때문에 자신있게 권면할 수 있음을 감사한 다는 것이다.
C. 지금까지 방언의 유익 없음을 설파한 바울이 마지막 순간에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말은 왜 하였을까? 이 구절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그러나 방언 말하기도 금하지 말라. 이 말이 없었더라면
고린도전서 14장의 의도는 더 분명했을 것이다. 즉 무질서한 방언을 금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혼란을 일으키기 쉬운 이 말을 한 바울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바울은 성령의 은사로 오는 방언은 여전히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때때로 방언의 은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바울은 그런 성령의 은사까지도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했다. 바울이 책망하는 것은 전혀 성령의 은사가 아니면서 교회에 무질서와 비난을 초래하는 사이비 방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방언 현상을 직접 목도하지는 못했다. 단지 글로에의 집 사람들로부터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 러므로 바울은 이런 미묘한 문제는 직접 가서 보고 결정하기를 원했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는 것은 바울이 가서 두세 증인들의 말을 들어 보고 하나하나 확정할 때까지 우선은 금하지 말고 있으라는 부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
고후 13:1).
고린도 교회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방언 현상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참된 성령의 은사인 방언, 성령의 은사가 아니지만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자랑하는 방언, 이방 종교의 의식에서 가져 온, 뜻을 알지 못하는 황홀경 속에서의 지껄임 등등. 바울은 무질서한 사이비 방언을 책망했지만 자기가 가서 직접 보고 판단할 때까지 모든 방언을 엄격히 금하는 것을 보류하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아직까지 그 현상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또 하나의 극단적인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