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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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죽은 자를 위해서 침례받을 수 있는가?
성경절
문제
 만일 위의 성경절을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죽은 자들을 위하여 대리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둘째는 죽은 자들에게도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기독교 정통 교리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성경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생긴다.
해석
 A.

 성경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침례를 받거나 어떤 공로를 끼쳐 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에스겔은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14:14, 16, 20)라고 말했다.

 이 성경절을 정통 교리에 어긋나지 않게 해석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그 당시 실제로 죽은 자들을 위해서 침례를 받은 사람 들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바울은 그 관습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지 부활의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 당시 사람들의 관습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즉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침례를 받고 있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너희들은 무엇 때문에 죽은 자를 위하여 침례를 받느냐? 그러므로 너희들도 부활을 확실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이런 설명의 난점은 그 당시 고린도에 그런 관습이 있었다는 어떤 증거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부활의 확실성을 드러내려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바울이 그런 잘못된 관습을 예로 들어 부활을 설명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B.

 두 번째 해석은 여기에 나오는 침례를 “고난의 침례”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즉 부활이 없다면 지금 죽어 있는 자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고난의 침례”를 받은 사람들의 모든 수고는 헛것이 되지 않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고난의 침례를 받았겠느냐? 저희가 비록 죽어도 다시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도 전체적인 문맥으로 보아 무리가 따른다.


 C.

 세 번째 해석은 헬라어를 살펴보는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하여 침례를 받는다라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페르(huper)인데 이 전치사는 “위하여, 대신하여, 때문에”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만일 휘페르를 “대신하여” 라고 해석하면 죽은 사람을 위하여 침례받는 것이 되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때문에” 라고 해석하면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즉 이 문장을 “때문에” 를 사용하여 다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 “죽은 자들 때문에 침례를 받은 자들 즉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 이유 때문에 침례를 받는 자들이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 소망이 무엇이 되겠느냐? 헛된 것이 되지 않겠느냐” 라는 것이다.
요약
 성경에는 죽은 자들은 이미 영원히 운명이 결정되었고 다시 회개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은 자를 대신하여 하는 어떤 행위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위 성경구절에서 “죽은 자를 위하여”라는 말은 “죽은 자 때문에” 혹은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려는 소망 때문에”로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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