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십계명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인가?
돌에 써서 새긴 율법은 십계명을 말하는 것인데 십계명이 죽게 하는 것인가? 왜 십계명을 의문 의 직분이라고 부르는가?
A. 왜 율법이 의문의 직분인가? 여기서
의문(
grammasin)이란 제사제도를 말하는 의문(儀文)이 아니고 글자로 쓰여진 율법이란 뜻이다. 제사 제도의 의문(儀文)은 헬라어로
도그마(
dogma)가 쓰이는데 여기서는 글자란 뜻의
그람마(
gramma)가 쓰이고 있다. 이 구절의 정확 한 뜻을 알려면
3장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바울은 추천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이 과연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를 받은 사람인지를 문제 삼았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글(의문)로 쓰여진 추천서보다는 마음에 새겨진 영적 추천서가 우월한 것임 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B. 그런 배경에서 바울은 글로 쓰여진 율법의 직분과 우리 마음에 쓰여진 영의 직분을 비교하고 있다. 왜 그 신성한 율법이 우리를 죽게 하는 직분이 되는가? 그 율법의 기능이 우리를 정죄하여 죄인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자로 쓰여진 율법은 그것이 아무리 신성하다 해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죄하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영적 복음보다 못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율법도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을 감히 바라보지 못했다. 그런데 영의 직분의 영광은 얼마나 더하겠느냐 하는 말씀이다.
C. 바울이 여기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율법 논쟁이 아니다. 글로 쓰여진 추천서를 요구하는 유대인들에게, 글(의문)로 쓰여진 것보다 더 확실하고 우월한 추천서는 영적 추천서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정죄하는 글로 쓰여진 계명을 받고도 모세의 얼굴이 그렇게 빛났거든 하물며 영의 영광은 얼마나 더 크겠느냐고 바울은 말한다.
바울을 비난하고 헐뜯는 사람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사도들이나 그외 어떤 지도자로부터도 말이나 글로 쓰여진 공식적인 추천서를 받은 일이 없다고 비난한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글로 쓰여진 것보다 영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더 큰 추천서인지를 설파하고 있다. 바울이 영적으로 키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의 추천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