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List
160. 바울은 죽기를 원했는가?
성경절
문제
 바울은 정말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했는가? 여기서 몸을 떠난다는 말이 죽는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바울은 차라리 죽어 주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 본문 말씀이 죽으면 영혼은 천국에 간다는 영혼불멸설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해석
 A.

 바울은 “벗고자 하지 않고 오직 덧입고자” (5:4) 한다고 말했다. 만일 “입음” 을 현세의 삶으로 보고 “벗는다"는 말이 죽음을 의미한다면, “벗고자 하지 않고” “덧입는” 것을 원한다는 말은 축기를 원치 않고 살아서 영원한 생명얻기를 원한다는 말이 된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바울은 다음절에서 말하기를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 이라고 했다. 마치 “육체로 살고 있는 것은 주님과 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차라리 죽어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 라는 말처럼 들린다. 바울은 여기서 과연 영혼불멸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죽으면 즉시로 주와 함께 산다고 믿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 다음절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 쓴”다고 말했을까?


 B.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몸을 떠나 주와 함 께 거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우선 바울의 죽음관과 부활관을 알 필요가 있다. 바울의 죽음관은 과연 죽으면 즉시로 영혼이 천국에 가서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영혼불멸설이었는가? 만일 그렇다면 본문의 “몸을 떠나 주를 만난다” 라는 말은 죽어서 영혼이 주와 함께 산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죽음관이 그런 것이 아니라면 여기서 말하는 “몸을 떠난다”는 말도 단순히 육체가 죽는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바울의 죽음관과 부활관은 고린도전서 15:51, 52데살로니가전서 4:16에 잘 나타나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 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바울은 죽은 다음에 영혼이 있어서 천국에 간다고 하지 않았다.

 만일 성도들이 죽어 이미 천국에 가 있다면 주 께서 강림하시는 날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죽음을 잠으로 보았다. 부활의 때까지 잠깐 의식이 없이 쉬는 기간으로 보았다. 그리고 부활의 날 홀연히 변화하여 썩지 아니할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 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바울이 말한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한다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는 말이 아닌 것이다. 죽으면 잠드는 것이지 주와 함께 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몸에 거한다”는 말과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기를 원한다는 말 은 무슨 말인가?


 C.

 바울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살아서 이 “죽을 것이” 영원한 “생명에게 삼킨 바” 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5:4). 죽은 다음 즉시로 천국에 가서 주와 함께 거할 수 있다면 왜 벗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소크라테스(Socrates)는 죽으면 감옥인 육체를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혼의 세계에 간다고 믿었기 때문에 기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바울이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 (5:8)이라고 말하면서도 벗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고 말했다.

 왜 바울은 빨리 죽어 주와 함께 살기를 바라지 않고 이 세상에서 생명을 덧입어 살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벗음이 단순히 이 세상의 죽음을 의미한다면 벗어봐야 주님을 만날 수가 없다는 것을 바울이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벗는 것” 이 단순한 죽음이라면 죽고 싶다는 것은 현실도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종말이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바울은 차선책으로 몸을 벗을 수 있을 때까지(종말이 올 때까지) 그 종말적 생명을 현세에서 덧입어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요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더라도 그것이 죽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죽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을 것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덧입 혀져서 영원한 생명에 삼켜진바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죄악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주를 직접 뵙고 함께 거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참으로 원하는 바는 이 세상이 끝나고 종말이 와서 주님과 함께 거하는 그날이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종말이 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든지 종말이 와서 주를 뵐 때든지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