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초기 활동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후(AD 35 경),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까지(AD 45-47) 바울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가?
A. 바울이 주도한 스데반의 순교가 AD 34년 가을이었으므로,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을 경험한 것이 AD 35년 초라고 생각된다. 바울은 침례를 받은 후 금식을 끝내고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 (
행 9:19, 20)하였다. 박해자가 복음 전파자로 바뀐 것을 보고 듣는 사람들이 다 놀랐으며 바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 (
행 9:22)시켰다. 그러나 그의 개심은 곧 유대인들의 격렬한 증오를 일으켰고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켰으므로 그의 제자들이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밤에 광주리에 그를 담아 성 밑으로 달아 내려 피신시켰다(행 23-25).
B. 바울은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아라비아로 갔다 (
1:17). 이 한적한 광야에서 바울은 조용히 연구하고 명상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완전히 회개하였으며 그에게 남아 있던 유대교의 모든 신학이 무너지고 새로운 신학이 성립되었다.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와 기도중에,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
고전 1:1)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가 열심히 전도하였다(
1:17). 그러는 동안 삼 년의 세 월이 흘렀다.
C. 회심한 지 3년 만에 바울은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1:18).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 하였다(
행 9:26), 거만한 바리새인 핍박자였던 그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준 상처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그들은 바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사람을 용서하고 알아주는 바나바가 나서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
행 9:27) 설명하면서 적극 바울을 변호하였다.
그러자 사도들은 비로소 바울을 받아주었고 그는 베드로를 만나 함께 15일을 유할 수가 있었다. (
갈 1:18), 그동안에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였던 주의 형제 야고보도 만났지만 다른 사도들은 보지 못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갈 1:19). 그동안도 바울은 가만 있지 않았다.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 (
행 9:29)니 유대인들이 그를 잡아죽이려고 힘썼다. 할 수 없이 예루살렘 형제들은 그를 고향 다소로 피신시켰다. 이때가 AD 38년경 그의 나이 34살 쯤 되었을 때였다.
D. 고향 다소로 온 바울은 안디옥에서 찾아온 바나바가 불러 줄 때까지 무려 6년이란 세월을 기다리게 된다. 아마도 이때는 바울에게 좌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낙망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교회가 그를 부르기를 기다렸다. 학식으로나 인품으로나 바울과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비교가 안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에 순종하였다. AD 44년 당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였던 바나바는 협력자를 구하다가 다소에 물러나 있는 바울을 초청해서 같이 안디옥 교회를 돌보게 된다.
E. AD 45년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선택하여 안수하고 세계 선교를 위해 파송한다. 2년 동안(AD 45- 47) 바울 일행은 남갈라디아 지방에서 열심히 일하여 교회들을 세우고 굳게 했으며 이방인 중에서 많은 개종자가 생겨났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바울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유대인들은 그들이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 고 주장해서 교회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의 요청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의 총회를 열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바울이 개심한 지 14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었다(
갈 2:1). 이때가 AD 49 년이었다.
F. 총회가 끝난 후 바울은 다시 3년 동안의 제 2차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AD 49-52). 바울은 에베소로 직행하고 싶었지만 성령께서 막으시기 때문에 발길을 유럽으로 돌린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곧 유럽의 부르짖음이었다. AD 53년에서 58년까지 5년 동안 바울은 제3차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10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성전에서 폭도들의 손에 붙잡히게 되고 2년 동안(AD 58-60)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황제에게 호소했기 때문에 로마로 가게 된다. AD 61년부터 63년까지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살면서 열심히 전도하였다.
AD 63년에 바울은 네로에게 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 나왔다. 그리고는 로마를 떠나 다시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지방을 순회하며 전도하였다. AD 64년 네로는 로마 시가지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 마침내 바울도 붙잡혀 로마의 토굴 속에 갇혔다. 그리고 AD 67년 어느 여름날 바울은 순교하였다.
AD 34년 가을, 스데반의 순교 후 얼마 안된 AD 35년 초에 바울은 다메섹의 회심을 경험한다. 3 년간(AD 35-38)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깊은 겸비와 수련의 기간을 거친 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지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신변이 위험해지자 고향에 물러가 6년(AD 38-44)을 더 기다린다. 바나바가 그를 불러주자 1차 전도여행(AD 45-47)을 다녀 온 후 안디옥 교회를 위해 알하다가 회심 후 14년 만에(
2:2) 예루살렘에 가서 총회에 참석한다 (AD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