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실 때까지만 필요한 것인가?
율법은 범죄 때문에 비로소 더해 주신 것인가? 율법을 천사들을 통해서 주셨는가? 중보자는 누구인가?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즉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만 필요한 것인가?
A. 율법은 범죄 때문에 비로소 더해 주신 것인가? 아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언약이 율법보다 먼저 있었으며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 요지다(
3: 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시내산에서 비로소 주셨는가? 그렇지 않다. 율법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부터 즉각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율법을 주셨다는 말은 아브라함 이후 430년 후에 율법이 생겼다고 말하는 것을 보아(
3:17) 시내산에서의 성문화된 율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주셨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율법은 범죄 때문에 비로소 더해 주신 것인가? 율법의 정신은 창조 때부터 있었고 타락한 이후 죄로 약해진 인간에게 그 율법의 조항들은 더 세분화되어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법함이 심하므로 언제라도 읽고 모든 사상과 행동의 기본이 될 수 있도록 자세히 기록된 성문화된 율법을 주셨다. 여기서
“범법함” 이란 헬라어
파라바세온(
parabaseôn)은
“선을 넘는다”는 뜻으로서 인간의 타락이 그 선을 넘었기 때문에 그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 율법을 구체화하여 기록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율법은 어디까지나 복음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복음의 모자란 것을 채워주는 것도 아니다. 율법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 흉악함을 절실하게 깨닫고 복음의 필요성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B. 율법을 천사의 손으로 전달하셨는가? 율법 은 보통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셔서 모세에게 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는 율법이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려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느 것이 맞는 표현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율법을 모세에게 주실 때에 천사들의 역할이 있었는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천사들이 하나님을 시위하고 율법을 주시는 일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고(
신 33:2; 행 7:38:
히 2:2) 유대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리고 천사들이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이 틀림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율법을
“천사들로 말미암아” 베푸셨다고 이해해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
C. 중보의 손을 빌려 율법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중보의 손이란 누구의 손을 가리키는가? 여기서 중보자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있으나 그리스도는 율법의 수여자이시지 중보자가 아니시다. 그러므로 문맥으로 봐서 하나님께서 천사들로 말미암아 주시는 율법을 받아 사람들에게 전달한 중보자는 모세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모세(중보자)를 통하여 주신 율법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을 대조하면서 율법의 한계와 제한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D. 율법은 약속하신 자손 즉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만 필요한 것인가? 율법은 그렇게 한시적이고 임시적인가? 그렇다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 (
마 5:18)어질 것이며 예수께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
마 5:17)고 오셨다는 말씀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갈라디아서 3:19-25은 율법의 기능이 갈바리에서 다 끝나고 무효가 됐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주 사용되어 왔다. 실제로 많은 주석들이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이 해석을 근거로 하여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지킴” 으로 구원을 받고 신약시대 는
“그리스도를 믿음” 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성경 전체의 사상과 위배된다. 아담의 타락 이후 구약시대이든 신약시대이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오직 하나의 방법만 가지고 계셨다. 구약시대 사람들도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이 드렸던 피의 제사가 다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것들이었다.
율법이 믿음을 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도 율법을 폐하지 않는다. 바울도 이것을 간파하고 로마서에서 믿음을 최고로 높이는 부분인
로마서 3:21-31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율법은 갈바리에서 끝나고 이제는 소용없이 되었다고 주장하여, 구약시대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며 신약시대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 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 인가?
도대체 율법의 무엇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인가? 율법 자체는 아니다. 율법은 십자가 후에도 엄연히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오심이 율법을 더 온전케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율법의 기능인가?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면 율법의 기능은 정지되는가? 그렇지 않다.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의 기능은 정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로 정지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율법의 존재나 율법의 기능이 아니라 율법에 매어 사는 것” (
3:23)이며
“몽학 선생 아래” (
3:25)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 자체가 아니라 율법과 우리와의 그릇된 관계가 십자가로 청산되고 명확해진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3:23에서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 까지 갇혔” 다고 말하여 이 사실을 잘 정리하고 있다. 율법은 원래 사람이 그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롬 3:20)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해하여 율법을 준수함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였으므로 율법아래 매이게 되고 약속의 자녀인 그리스도가 오시어 모든 것이 명확히 펼쳐질 때까지 그 그릇된 관계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분명히 드러나 약속하신 자손인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율법에 매어 사는 것”과 “몽학선생 아래 있는 것은 이제 끝날 것이다.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그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율법의 존재나 율법의 기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매어 사는 것”(
갈 3:23)이며
“몽학선생 아래” 갇혀 있는 것을 말한다(
3:25).
다시 말해서 십자가로 율법 자체나 율법의 기능이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우리와의 그릇 된 관계가 청산되고 명확해진 것이다. 율법은 원래 사람이 그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롬 3:20)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오해하여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였으므로 율법 아래 매이게 되었으며 약속의 자녀인 그리스도가 오시어 모든 것이 명확히 펼쳐질 때까지 사람들은 그 그릇된 관계 속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모든 일에 있어서 대표적 유대인인 바울의 참담한 경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가 오시어 십자가로 단번에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율법 아래 살 필요가 없다. 십자가로 중지된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생각 즉 율법 아래 사는 그릇된 관계이지 율법 자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