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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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우리의 구원과 멸망은 예정되어 있는가?
성경절
문제
 우리의 구원과 멸망은 창제 전부터 예정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예정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가?
해석
 A.

 본문은 신약에서 예정론의 근거로 흔히 쓰이는 성경절이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예정되어 있는가? 예정론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예정론의 이론적 근거를 정립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라고 볼 수 있다. 중세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D 354-430)는 그의 독특한 경험과 그가 몰두했던 신플라톤주의 (NeoPlatonism)의 영향으로 몇 가지 새로운 견해들을 교회 안으로 가져왔다. 그것들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절대 예정, 그리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제한된 속죄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은 처음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자들은 예정론을 주장하면 전도할 의욕을 없애 버리고,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며, 사람들을 절망으로 이끈다고 생각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이 계속 논쟁을 일으키자 아우구스티누스 사후에 열린 오랑쥬 종교회의(Synod of Orange)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택받은 자는 구원하시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멸망받도록 예정하셨다는 이중 예정을 배제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는 선택받는 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함이라고 결정하여 성경의 사상과 어긋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예정론을 바로잡으려고 힘썼다.


 B.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뱅(Calvin)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잘못된 예정론을 다시 들고 나와 주|장하면서 양심적으로 그것에 반대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부인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무리하게 예정론에 도입시켜 멸망과 구원을 창조 전부터 절대 예정하셨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나타내는 것이 된다.


 C.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나를 택하셨다는 생각도 인정할 수 있고 창세 전에 나를 택하셨다는 말씀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정론에서 주장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과 멸망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의미의 절대주권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반대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의 타락도 예정되어 있었다는 말이 되어 타락의 원인이 결국 하나님께 있게 된다. 성경에 무수히 나오는 돌아오라는 회개의 초청도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되고 만다. 구원과 멸망이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무슨 호소가 더 필요할 것인가? 전도도 필요 없게 되고 심판도 쓸모 없다. 미리 예정되어 있는데 심판의 날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단 말인가? 결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까지도 훼손되는 일이 벌어진다.


 D.

 이 난해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울의 독특한 신앙적 배경에 대해 알아야 한다. 바울은 핍박자인 자기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하셨다고 굳게 믿었다. 자기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고 박해자의 길로 갔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셨기 때문이라는 바울의 강한 확신이 그의 편지서 여기저기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마치 예정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요약
 하나님께서는 물론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우리의 멸망과 구원이 미리 예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예정론은 많은 자체 모순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속성에도 맞지 않는 이론이다. 예정론을 주장하면 하나님께서 소중히 생각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무시되며 전도, 회개의 호소, 심판, 심지어는 십자가의 공로까지 무색하게 되고 만다. 바울 서신에 나오는 예정에 관한 구절들은 바울의 독특한 회심의 경험과 그를 핍박자에서 택하셨다는 바울의 강한 확신이라는 배경 아래에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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