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오히려 기뻐하는 괴로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이루지 못하시고 남겨 놓으신 고난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울이 대신 채울 수가 있는 것인가? 육체에 채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A. 골로새서의 주제는 그리스도론이다. 골로새의 이단들은 그리스도는 우리와 상관없다고 가르쳤고, 율법이나 천사 숭배나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로 신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바울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속주이시고(
1:13, 14), 창조주이시고 (
1:15-17), 교회의 머리 되시고 (
1:18),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심(
1:19-23)을 확실히 밝혔다. 이제 바울은
골로새서 1:24부터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의 사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B.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 이란 현재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의 처지와 괴로움을 말한다. 괴로움이란 단어가 헬라어 복수형으로 쓰인 것을 봐서 괴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불평을 터트리는 대신에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기꺼이
“그리스도 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선언한다.
C.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미처 다 못 마치시고 우리에게 남겨주신 고난 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 중에서 무엇이 모자라거나 만족스럽지 않아서 우리에게 넘어온 어떤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이어지는 성도의 고난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 (
막 13:13)이라 하여 우리에게 계속적인 고난과 핍박이 있을 것을 가르치셨다. 바울이 지금 당하는 괴로움은 그리스도에 이어지는 성도의 고난이다.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머리가 되시는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이어지는 성도의 고통을 기꺼이 그가 담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가 못다 하시고 우리에게 넘겨주신 어떤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부터 그의 성도들에게 이어지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런 고난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기꺼이 당하고 있다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