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아이를 낳아야 비로소 구원이 있다는 말인가? 해산과 구원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A. 구구한 해석이 있다. 바울은 여기서 왜 갑자기 여자의 해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첫째,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여자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의무를 다하고,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자녀를 낳지 못하거나 결혼하지 않은 여인들 에게는 구원이 없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해산을 구원과 연결시키는 것은 성경의 구원론과도 조화되지 않는다.
둘째,
창세기 3:16을 보면 해산의 고통은 범죄로 인해서 여인에게 내린 형벌인데 여인들이 그 형벌을 치르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마 침내는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해석도, 해산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는 여인에게는 구원이 없는가 하는 문제가 생겨 성경의 구원론과 일치되지 않는다.
셋째, 본문의 해산을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해산하는
“특별한 해산”으로 보아 이제는 모두가
“해산을 통해서”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여자들의 행실과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리스도를 통한 만민의 구원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B. 문맥으로 보아 본문의
“해산”을
“여인이 아기를 낳는다”는 의미로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가장 성경적인 해석은 문맥 자체에서 나온다. 즉 문맥에 의하면 바울이 말하고 싶은 의도는 다음과 같다.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잉태하고 사노라면(거하면) 그 결과로(그것을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여자들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은 아기를 낳아서 구원을 받는다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따라서 해산을 상징적으로 생각하여 참고 기다리며 고통스럽지만 그 결과로서” 의 뜻으로 보면 문제가 풀어진다. 즉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품어 참고 기다리고 정성스럽게 사노라면(거하면) 그 결과로(그것을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는 뜻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