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에수께서 마치 우리에게 불화와 반목를 주기 위해서, 혹은 가족간의 분열을 일으키기 위해 오셨다는 말씀처럼 들려서 오해의 소지가 있고, 또한
요한복음 14:27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는 말씀이나
요한복음 16:33의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는 예수 자신의 말씀과도 상치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정말 검을 주러 오셨는가?
A. 우리가 예수께서 탄생한 밤 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눅 2:14) 라고 노래한 것을 생각하고. 또한
마태복음 11:28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고려하면. 예수께서 오신 것은 화평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본문의 말씀은 우리를 혼란시킨다.
먼저 예수께서 어떤 배경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경과 문맥을 무시한 채 어떤 한 절을 떼어내 자기 주장을 증명하는 데 성경 말씀을 사용하는 것은 성경 해석에서 가장 피해야 할 방법이다.
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몰려올 박해와 핍박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스도 때문에 당하는 그 박해는 무서운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 (
10:17)할 것이며. 그들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
10:18)갈 것이다. 장차 신앙 때문에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
10:22) 받을 것이다. 이런 외적인 박해와 핍박의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싸움(검)과 죽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수많은 순교자들이 나온 것이다.
B. 그렇다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내적이고 영원한 것을 가리킨다. 아무리 박해가 거세고 우리가 죽음 앞에 서게 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 즉 이 세상에서 불의한 일을 당하거나 심지어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잡혀 죽는 순교자들도 이 평안을 누렸다. 그 평안은 또한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릴 영원한 성격의 것이었다. 현재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강을 누리고 살게 될 것이다.
C. 가족 사이의 반목에 대해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는 아마도 그분이 친히 경험하신 것을 이야기하셨을 것이다. 그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고(
요 7:5)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분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고 잡으러 다니기까지 했다(
막 3:21). 그런 일들이 그분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것을 예수께서는 미리 알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가족 관계나 인륜을 어겨가며 가족끼리 서로 원수처럼 되는 것이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마태복음 10장은 신앙의 박해를 각오하고 참으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예수께서 화평을 주지 않고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신앙으로 생기는 외부적 박해나 갈등이 았을 것을 의마한다. 그것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외부적으로는 신앙 때문에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는 가족에게도 박해를 당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의 평안과 화평을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