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고난을 받아 죄를 그친 자가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가? 만일 그리스도인 이라면 육체의 고난과 죄를 그치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과연 죄를 그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A. 베드로전서 4장의 초반부(
4:1-11)는 의인으로서 모든 고난을 감당하시고 마침내 죄인들 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육체의 고난을 감내하며 사는 것이 유익함을 말하고,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살 것을 권면한 글이다. 여기서
“육체의 고난을 받아 죄를 그친 자”를 만일 그리스도라고 보면 그리스도가 죄를 짓다가 육체의 고난을 받아 비로소 죄를 그친 자가 되었다는 해석이 나오기 때문에 옳지 않다. 그리스도는 죄를 지은 일이 없으시다(
벧전 2:22).
B. 그러므로
“육체의 고난을 받아 죄를 그친 자”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육체의 고난은 극심한 고통을 주지만 마치 갑옷 같아서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것에서부터 보호해 준다. 즉 육체의 고난은 죄를 없애주거나 죄의 용서에 필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게 하고 순수한 신앙을 갖게 해주어 죄를 그치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성경절을 죽은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구원받을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해석하면 몇 가지 모순이 생긴다. 영혼불멸을 믿는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죽은 다음에 영혼이 천국과 지옥에 간다고는 생각하지만 지옥의 영혼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온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모순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C. 여기서
“죄를 그친다” 라는 말은
“죄를 짓지 않는 경지” 나
“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아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해서 그런 상태에 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죄를 그친다” 란 말은 무슨 뜻인가?
첫째로는 고난 속에서 죄를 즐기는 것을 그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육체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 사람은 죄에 탐닉하는 것을 그치게 된다. 오히려 그 고난에서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는 어떤 절대자를 바라게 된다. 그러면 죄를 즐기는 것을 그치게 된다. 고난 속에서 자포자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죄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는 죄를 반복하여 짓는 것을 그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육체의 고난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반성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양심의 가책없이 반복적으로 죄를 짓게 되는 것을 그치게 된다.
셋째로는 고난 중에서 사람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한 것을 그치게 된다. 고난을 통하여 사람은 자기의 부족을 절실하게 느끼고 성령의 도우심과 그리스도의 완전 하심을 사모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의 죄됨과 누추함에 대하여 예민한 감각을 갖게 되어 죄를 싫어하게 된다.
육체의 고난을 받아 죄를 그친 자는 그리스도인이다. 육체의 고난 자체가 죄를 없애 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고통 속에서 순수한 신앙을 갖게 해주어 죄를 그치게 도와준다. 죄를 그친다는 말은 죄를 다시 짓지 않는다거나 죄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고난 중에서 죄를 즐기거나 죄로 항하는 성향이 그친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난당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