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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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말은?
성경절
문제
 사람이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사람과는 서로 다른 존재인데 어떻게 우리가 신적인 것에 참여할 수 있는가?
해석
 A.

 본문의 말씀을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하면 안 된다. 단지 참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한다는 말에서 참예한다는 헬라어 단어 코이노니아(koinönia)는 우리에게 익숙한 헬라어 단어로서 교제 혹은 친교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직역하면 신의 성품과 교제를 나누는 자가 되게 하셨다는 말이다. 사람은 원래 타락하기 전에는 창조주 하나님과 직접 교제를 나누었으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 특권을 빼앗겼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한 사람에게는 다시 이 교제가 말씀과 신앙을 통해 시작된다는 것이다.


 B.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1:4)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란 어떤 사람인가? 다음 절에 그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다. 즉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 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1:5-7)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1:8)함이라는 다음 절의 말씀으로 더욱 분명해진다. 만일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라는 말씀이 우리가 신(神)이 된다는 뜻이라면 신(神)에게 무슨 덕이나 절제나 인내나 경건이 필요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 요구되겠는가?


 C.

 우리가 구원의 약속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 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 계속해서 머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는가? 하나님과의 사귐에는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우리가 그 관계를 사귐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적어도 그 사귐에 시간을 쓰는 것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우리 삶에서 가장 좋은 부분들을 그 사귐을 위해 투자해야 하고, 넉넉한 인격적 관계가 이루질 때 깊은 사귐이 생겨난다. 사귐이 깊어지면 사랑이 생겨나고 마침내는 만나서 같이 있게 되기를 고대하게 된다. 그 “만나서 같이 있게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희생되어도 좋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신의 성품에 참여”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귐에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한때의 열광을 우리는 사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참된 사귐은 지속적이고 변함이 없는 평생의 관계이다. 일시적인 이익이나 이기심에서 나온 교제는 사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사라지고 시들어지는 순간적 관계일 뿐이다. 그리스도와의 사귐은 마침내 참된 사랑(Agape)의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 사귐은 우리로 하여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 (고전 13:4-7)게 한다.

 이런 끊임없는 그리스도와의 사귐(요일 1:3)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빛 가운데 거하게 되고, 그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요일 1:8). 그리고 그의 은혜 속에서 성화가 이루어진다. 이것을 성경은 “신의 성품에 참예하 는 것” 이라고 부른다.


 D.

 우리가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이렇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면 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 지고 “이같이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 과정 전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요약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말은 사람이 신의 영역에 살 수 있다거나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참예라는 단어의 헬라어 뜻은 코이노니아 즉 인격적인 사권이요 교제다. 이런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사권 속에서 우리는 성화의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신의 나라 즉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다. 이 모든 과정 전체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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