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 년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계산하면 주께서 재림을 하루 늦추시면 사람들은 천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는 셈이 된다. 창조주일의 하루도 천 년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능력까지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구절은 6,000년의 세상 역사가 끝난 다음 복천년이 온다는 학설의 근거가 되기도 하는 성경절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성경에 나오는 많은 예언적 기간도 하루를 천 년으로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연대 계산에 일대 혼란이 이르러 오게된다. 정말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 년인가?
A.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왜 이 말씀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 먼저 문맥상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한다. 문맥을 생각하지 않고 어떤 특정 문구나 단어만을 가지고 해석을 시도하는 자구적 해석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피해야 할 방법이다. 시간에 대한 이 말씀은 당시에 환난과 고난 중에서 주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하며 실망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주신 권면이었다(
벧전 3:9), 그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초조하게 기다렸으며 그 기대가 깨어지면 주께서 더디 오신다고 원망하곤 하였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으로 측량거나 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특별한 시간에 따라 움직이며 그 하나님의
“때”(
갈 4:4)가 오면 정확히 예언은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 개념과 달라서 사람이 예측해낼 수 없다. 이 예측 불가능한 하나님의 시간의 특성은 하루가 천 년 같을 뿐 아니라
“천 년도 하루” 같다는 말씀으로 증명이 된다.
B. 베드로는 이 말씀을 구약(
시 90:4)에서 인용했는데,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 이라는 이 구절은 하나님의 영원성 (
90:2)과 인간의 유한성(
90:3, 5, 6)을 비교하면서 인간에 유한성에 대한 탄식과 아울러 하나님의 영원성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한 글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시간을 계산하려는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단지 인간의 유한한 시간 같은 것은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설명한 것일 뿐이다.
베드로는 고난 중에서 재림을 고대하며 때로는 더디다고 원망도 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권한다. 하나님의 영원한 시간은 인간의 유한한 시간으로 측량하거나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유한한 시간 같은 것은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순간에 불과함을 설명 한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