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그리스도인은 만사가 잘되어야만 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영혼이 잘되고 만사형통하며 병에 걸리지 않고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꼭 나아야만 하는가?
A. 요한삼서 2절을 사용하여 일부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범사에 잘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한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는 한, 범사에 잘못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범사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 전체를 가리킨다. 자녀교육 문제, 직장 문 제, 사업 문제, 인간 관계의 문제, 의식주의 문제, 생활의 안정과 기쁨의 문제 등등 모든 일을 가리킨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의 피로 구속함을 얻어 영과 혼과 육이 잘 되었으면 필연적으로 범사에 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메시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세 구원적이며, 또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그리고 값싼 기복 신앙으로 흐를 염려가 다분히 있으며, 영적 성숙과 하나님의 축복의 척도를 물질적인 부요함으로 평가하는 잘못에 빠질 수 있다. 범사에 잘된다는 것이 꼭 물질의 축복이나 인간적인 모든 일이 형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극도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죽음과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은 이루어진다. 어떤 때 는 하나님의 선이 이 지상의 우리 삶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시적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B.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또 하나의 주장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단순히 영적인 구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육체적인 질병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담의 타락은 단순히 영적인 타락만이 아니었다. 그의 타락은 필연적으로 육체의 저주와 질병 그리고 죽음을 수반했다. 따라서 타락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구원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전인적인 구원, 즉 우리의 육체를 죽음과 질병에서 생명으로 바꾸어 놓는 좀 더 넓은 의미의 구원이다.
이러한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 옳기도 하지만 구원에는 반드시 육체적인 치료가 따라야 한다고 편협하게만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고침을 받지 못하거나 병으로 죽는 사람들은 마치 용서받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한 사람처럼 되고 말기 때문에 절망과 자포자기를 가져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끝내 죽어 가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으며 사랑하시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는 죽음도 있다(
시 116:15).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도 질병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았다(
왕하 13:14:
딤전 5:23).
C.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요한의 간구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복을 받으며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말씀만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러우실 때 이러한 형태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믿음을 보여 주시는 대신, 오히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막 14:36)라고 기도하므로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맡기는 성숙한 신앙의 모본을 보여 주셨다.
본문의 말씀은 만사가 형통하기를 원한다는 요한의 간구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신뢰하기 때문에 반드시 만사형통하고 질병도 치료되어야 한다고 편협하게 주장할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죽음과 불행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는 성숙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본문을 하나의 간구로 보아야지 꼭 그렇게 된다는 명령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