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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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144,000명은 상징적인 수인가?
성경절
문제
 144,000명은 실제적인 수인가 아니면 상징적인 수인가? 만일 실제적 수라면 재림시 살아서 구원받을 사람이 십사만 사천 명뿐이란 말인가? 만일 상징이라면 왜 상징적인 숫자를 주셨을까?
해석
 144,000명이 실제의 수냐 아니냐 하는 논쟁에 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그리고 144,000명과 셀 수 없는 무리가 같은 무리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 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각각의 주장을 살펴보면서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인지 생각해보자.


 A.

 먼저 144,000은 문자적으로 실제의 수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의하면 144,000은 특별한 무리들이다. 그들은 살아서 갖가지 재앙을 다 견딘 사람들이며,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 (14:4)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그들밖에 알 수 없는 노래가 있으며 하늘에서 특별한 계급을 구성하고 있다. 144,000명이 너무 적은 수라는 비평에 대해서 그들은 타협안을 내놓기도 한다. 즉 5,000명을 먹이시는 사건에서 5,000명 이란 숫자가 남자만 계수된 것을 봐서 144,000명도 같은 계수 방법을 따랐을 것이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숫자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B.

 그러나 144,000명을 실제적 수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첫 째로, 구원받을 자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성과 구원의 성격에 어긋나는 일이다. 성경은 누구든지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지 그 수를 제한하신 일이 없다.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므로 하나님 편에서 수를 제한하실 이유가 없다. 만일 각 지파에서 정확히 12,000명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신다면 구원이 너무나 기계적이 되고 숫자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로, 144,000명이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은 현실성이 없다. 열두 지파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각 지파에서 12,000명씩의 순수한 혈통이 남아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셋째로, 144,000명이 만일 실제 수라면 요한계시록 7장의 많은 부분을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해석해야 하며 실제로 이마에 인을 받는다고 믿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요한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넷째로, 144,000명이 실제적 수라고 믿으면 현재 살아있는 지구의 인구에 비해 그 수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 제한된 무리 속에 들어가야 된다는 강박 관념이 생긴다. 그래서 144,000명이 실제 수라고 보는 개인이나 그룹은 144,000명 이란 수를 상당히 제한적이고 폐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교회는 144,000명을 결혼하지 않은 성직자로 보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144,000 명을 특별히 부활한 무리인 하늘반열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기타 기성교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144,000명을 강조하면서 자기들의 모임에 들어와야 구원이 있고 144,000 무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 섯째로, 144,000명이 실제적으로 그렇게 제한된 수이며 특별한 무리라면 하늘에는 십사만 사천으로서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하나의 계급이 형성될 것이다.


 C.

 반면에 144,000명을 상징적인 수라고 해석 할 수 있는 증거는 많다. 우선 요한계시록 자체가 상징으로 풀어야 할 상징과 상징적 숫자로 가득 찬 책이다. 요한계시록 7장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가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인 지상의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거기에서 나온 144,000이란 숫자도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44,000을 (3×4)2×103으로 보고 있다.

 즉 3은 삼위일체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수이며 4는 동서남북 4방위에 근거한 땅과 우주의 수인 데 이 두 수를 곱한 12는 성경에서 완전수이다. 따라서 12의 제곱인 144는 최상의 완전수를 의미하며 거기에 충만을 나타내는 10의 세제곱을 곱하여 144,000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44,000은 충만하고 완전한 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만일 십사만 사천 명을 상징적인 수라고 보면 우리가 처음에 제기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 즉 영적 이스라엘로 대표되는 성도들로부터 각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완전하고 충만 한 수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D.

 다음에 남는 문제는 7:4“144,000”7:9“셀 수 없는 큰 무리” 가 과연 같은 사람들이냐 아니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냐 하는 것이다. 먼저 두 무리가 처한 시간과 상황만 다를 뿐 동일한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보는 학자들은 (Hoekema, Beckwith)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144,000명은 큰 환난을 겪기 전의 무리이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큰 환난 후에 모인 무리로서 환난 전이냐 후이냐 하는 시기만 다를 뿐 같은 무리이다.

 (2) 144,000명은 멸망하는 천사가 아직 “땅이나 나무나 바다” 를 해하기 전인 지상에 있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모든 것이 끝난 후 흰옷을 입고 손에 승리의 종려가지를 들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즉 그들이 아직 지상에 있을 때와 하늘 보좌 앞에 있을 때를 비교한 것으로서 장소만 다를 뿐 동일한 구원받은 무리라는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이 “내가 들으니” 라고 말한 것과 “내가 보니” 라고 말한 것은 결국 같은 사건이었다. 즉 처음에 들은 것을 나중에 확인했다는 것이다. 요한 이 “144,000명” 이라고 들었지만(7:4) 그것이 상징수였기 때문에 7:9에서 실제로 보좌 앞에 모인 것을 보니 “셀 수 없는 큰 무리” 였다는 것이다.

 (4) 그러므로 두 무리는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시기와 장소가 틀렸지만 결국 동일한 무리라는 설명이다.


 E.

 "144,000명”과 “셀 수 없는 큰 무리” 를 서로 다른 무리라고 보는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편다.

 (1) “144,000명”은 재림 직전 살아서 마지막 대환난을 겪고 “사람 가운데서 구원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14:4)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바쳐진 사람들이다. 7:9“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온 사람들 중에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 이다. 그러므로 두 무리는 서로 다르다.

 (2) “144,000명” 은 비록 상징적인 수일지는 모르지만 일단 셀 수 있었던 무리이고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요한이 보기에 너무 많아 셀 수 없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두 무리는 서로 다르다. “144,000명” 은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난에 들어가는 자들이지만,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은 이미 큰 환난을 통과한 자들이다. “144,000명”은 지상에 있지만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은 하늘에 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무리라는 주장이다.


 F.

 세 번째 주장은, 두 무리는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144,000명 까지 포함한 각 시대를 거쳐 구원받은 성도들의 무리라는 생각이다. 즉 144,000명이 살아서 구원받아 다른 사람이 부르지 못하는 새 노래를 부르는 무리이긴 하지만(14:3), 특별한 무리로 계속 존재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땅에서 구원받은 셀 수 없는 무리에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이 세 번째 주장이 그래도 제일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본다.
요약
 우리는 144,000명의 신원에 대해 잘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고백일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란 성경에 계시된 것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근거로 몇 가지를 추측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144,000” 이라고 들은 “셀 수 있는” 인 맞은 무리를 바로 다음 장면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144,000명”“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서로 다른 무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즉 “44,000명”은 재림 직전에 살아서 하나님의 인을 맞고 재림을 맞이하는 무리이며 “셀 수 없는 큰 무리”“144,000명”을 포함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체적인 무리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44,000명이 실제의 수이냐 아니냐 혹은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같으냐 다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144,000명의 아름다운 품성을 닮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확실히 알 수 없는 “144,000명” 같은 문제로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며 형제를 비난하거나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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