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가끔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작기로 정평이 나있는 겨자씨 한 알의 믿음이란 도대체 얼마 만한 믿음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 그 정도의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을까? 우리가 그런 일을 할수 없는 것은 겨자씨만큼의 믿음도 없기 때문일까?
A. 겨자나무는 비록 그 씨는
“모든 씨앗보다 작은 것”(
13:31)이라고 할 만큼 작지만 줄기는 보통 1.5미터 정도로 자라며 지역에 따라서는 3미터까지도 자라기 때문에 마치 큰 나무같이 보인다.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가장 작은 씨앗과 산을 비교하여 시청각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어떤 경우에 겨자씨를 비유로 사용하시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방법이 될 것이다. 겨자씨는 믿음을 나타내는 데 두 번 쓰였다(
마 17:20:
눅 17:6). 그리고 세 번은 겨자씨로 천국을 비유하신다(
마 13:31:
막 4:31:
눅 13:19).
B. 마태복음 13:31에는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기록하여 겨자씨를 천국에 비유하고 있다.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은밀함이다. 겨자씨는 아주 작기 때문에 크는 것이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을지 몰하도 확실한 방법으로 은밀히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다.
둘째는 처음에는 미미하게 보이나 점점 커져서 급속도로 확장될 것을 의미한다. 씨 중에서도 작은 겨자씨는 마침내 3미터나 되는 큰 나무로 성장하여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된다. 천국도 처음에는 미미하게 보이지만 마침내 온 세상을 정복할 것이다.
셋째는 변화성이다. 아무리 미미하게 보여도 그 안에 복음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 큰 변화를 가져오고 만다는 것이다. 겨자씨는 작고 보잘 것이 없지만 그 안에 큰 나무로 자랄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수한 변화를 일으켜 마침내 큰 나무처럼 성장한다. 천국 복음도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마침내 창대하게 변화되고 만다는 것이다.
C. 이런 배경을 가지고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마태복음 17:20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는 장면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믿음의 많고 적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있고 없음에 대해 언급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겨자씨 만한 적은 믿음이라도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란 보잘 것 없고 신통치 않은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력을 가진 살아 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a 믿음이 미미하게 보여도 산을 옮기는 것과 같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큰 일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산을 옮긴다는 것은 실제로 산을 이동시키는 능력이나 기적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이루시는 상상을 초월하는 큰 일들을 의미한다.
겨자씨를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믿음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믿음의 있고 없음에 대해 언급하셨다.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라도 그것이 생명력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이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란 보잘 것 없고 신통치 않은 믿음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력을 가진 살아있는 믿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그 믿음이 미미하게 보여도 산을 옮길 만큼 불가능하게 보이는 큰 일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산을 옮긴다는 것은 실제로 산을 이동시키는 마술 같은 능력이나 기적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그것이 아무리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산과 같이 거대한 장애물도 정복하고 말 것이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