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침례자 요한의 음식은 메뚜기와 꿀이었는가?
침례자 요한의 음식은 정말 메뚜기와 석청이었나? 석청과 메뚜기는 다 먹을 수는 있지만 음식으로 삼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침례자 요한은 정말 석청과 메뚜기를 음식으로 삼았는가?
A. 중동 지방에서는 고대로부터 메뚜기가 식용으로 애용되어 왔다. 아랍 지방에서는 지금도 메뚜기를 시장에서 식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오늘날도 단백질 보충을 메뚜기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몇몇 부족들이 있다. 그들은 메뚜기를 불에 굽거나 끓여서 먹으며 남은 것은 햇볕에 말리거나 가루로 만들어 보관한다. 말린 메뚜기는 약 50%의 단백질과 20% 정도의 지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석청은 광야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야생 꿀로 광야 바위틈이나 바위 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식품이었다. 요나단은 전쟁 중에 바위 밑에 흐르는 꿀을 먹고 배고픔을 면하기도 했다(
삼상 14:25-30).
B. 메뚜기와 석청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지만 먼저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침례자 요한이 꼭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살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요한의 약대 털옷과 가죽띠가 그가 선지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옷인 것처럼, 메뚜기와 석청도 그가 광야에서 생활한 금욕적인 선지자라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여기에 언급되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서 그는 광야에서 구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소박한 음식을 먹었지만 그중 광야에서의 금욕적인 생활을 극명하게 나타내 주는 두 가지 음식만을 예로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광야에서 그가 다른 음식을 전혀 구할 수 없을 때는 오직 메뚜기와 석청만으로 산 때도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는 다 광야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허락된 것 들이며(
레 11:22), 고대 아라비아 사람들이나 수리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침례자 요한이 이런 음식으로 최소한의 영양만 섭취하면서 일정 기간을 견딜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침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것은 별다른 문제가 없다.
C. 침례자 요한이 먹은 메뚜기를 식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계속 메뚜기와 석청만 먹고서는 몸을 지탱하기 힘들다는 데 기인한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요한이 먹은
아크리데스(
akrides, 메뚜기)가 곤충이 아니라 작은 야생 새라든가, 야생 배 혹은 과일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타티아누스(Tatian)의 디아테사론(Diate-ssaron)은 메뚜기 대신 우유(milk)라고 기록하고 있다. 금욕주의자이며 채식주의자인 에비온파(Ebionites)는
아크리데스(메뚜기)를
엥크리데스(
egkiides. 과자)라고 바꾸었고, 헬라교회 교부들도
아크리데스를
아크로두리스(열매)라고 읽었지만 성경상 근거는 없다.
한편, 요한이 먹은 메뚜기가 곤충이 아니라 케롭나무의 열매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에는 유력한 언어학적 증거가 있다. 케롭나무는 지중해 연안에 광범위하게 자라는 식물인데 팔레스타인에서도 흔한 나무이다. 그 열매는 늦은 봄에 열리는데, 모양은 리마 콩과 비슷하며 생것으로 먹을수도 있고 영양분이 풍부하여 중동 지방에선 가난한 사람들의 중요한 음식이 되기도 한다. 탕자가 먹은 쥐엄 열매가 바로 이 케롭나무 열매라고 생각된다. 영국에서는 이 케롭나무 열매를 메뚜기(locust)라고 부르고 그 열매를
“요한의 음식”이라고도 하며 주로 가축 사료로 쓰고 있다.
침례자 요한이 실제로 메뚜기와 석청만을 먹고 살았다 해도 별 문제는 없다. 광야라는 특수 환경이었고 메뚜기와 석청이 다 고대의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선지자성과 금욕 생활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먹은 음식 중 대표적인 음식만을 예로 들었다고 생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광야라고 해도 곤충인 메뚜기를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함든 사람들은 아크리데스(메뚜기)가 곤충인 메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나 가축이 먹는 식물이었으며 광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케롭나무의 열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