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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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부자가 죽으면 바로 지옥에 떨어지는가?
성경절
문제
 가난한 자들은 죽어 천국에 들어가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는가?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은 사람은 죽어 고생해야 하는가? 불꽃 가운데서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지옥이 과연 존재하는가? 천국과 지옥은 큰 구렁 하나 사이로 서로 마주 볼 수 있으며 지옥의 고통을 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가? 예수께서 과연 영혼불멸에 대해 가르치려고 이 비유를 사용하였는가?
해석
 A.

 이 비유의 참 뜻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의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로, 이것은 실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교훈을 가르쳐 주기 위한 비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유는 어디까지나 비유지 사실은 아니다. 나무들이 서로 대화하는 비유가 있다고 해서 나무들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로, 예수께서는 청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였다. 즉 그들의 언어와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사용하여 교훈을 전달하였다는 사실이다.

 셋째로, 이 비유는 재물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일련의 비유 중 두 번째 비유이다. 즉 이 비유의 주제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라는 교훈이다. 복음서 기자들은 같은 주제를 가진 비유들은 한자리에 모아 놓곤 했다. 이것은 비유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마태복음은 25장에 종말에 관한 비유 3개를 나란히 모아 놓았다. 누가복음은 15장에 잃은 자를 찾는 비유 3개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어서 16장에 재물의 올바른 사용에 관한 비유 2개를 연속하여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나오는 비유일수록 더 밀도 있고 강조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B.

 어떤 사람들은 이 비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영혼불멸 교리의 중요한 근거로 생각한다. 즉 천국에 간 거지 나사로와 지옥의 불꽃에 떨어진 부자처럼,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살아서 천국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몇 가지의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긴다. 첫째로, 가난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다 천국에 들어가고 부자들은 살았을 때 좋은 것을 받았다는 이유로 지옥 불에 떨어지느냐 하는 문제이다. 가난한 자들은 다 의인이고 부자는 다 악인이라는 전제는 불합리한 것이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성경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부유하게 산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도 다 지옥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천국과 지옥이 구덩이 하나 사이로 서로 마주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유에서 부자는 눈을 들어 천국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물을 달라고 청한다. 만일 천국과 지옥이 서로 마주 볼 수 있어서 사랑하는 가족이 불꽃 중에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과연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최고의 고문 장소요 생지옥이 될 것이다.


 C.

 그러므로 이 비유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개념을 사용하여 재물의 올바른 사용이라는 주제를 설명하려고 도입한 예화이지 사실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그랜드 종합주석은 이 비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본 비유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따라서 본 비유는 기독교의 구원관과 다소 거리가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비유란 언제나 진리의 한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며 그것 자체로 모든 진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낼 수는 없다. 그리고 종합적인 진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만 파악된다. 여기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도 재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용(善用)해야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도입 된 것이지 구원의 방법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그랜드 종합주석, 13:368). “유대인들은 의인은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고 생각했고 음부와 낙원이 매우 가까이 있어서 서로 상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고 믿었다”(상게서, 13:368), 예수께서는 그들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어 재물의 올바른 사용에 대한 교훈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D.

 첫 번째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지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 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 말을 듣고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연달아 다음 비유를 말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왜 나사로의 이야기를 꺼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다. 나사로의 비유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준 충고요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려는 말씀이다. 즉 다음과 같은 것들을 가르쳐 주고 싶었을 것이다.

 (1)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현재의 신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부자라고 해서 혹은 유대인이며 바리새인이라고 해서 영생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나사로는 멸시받는 거지였지만 “하나님의 도움” 이라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영생을 준 비하며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부자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지만 영생 을 준비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영생을 얻

 지 못했다.

 (2) 이 세상의 재물은 미래를 위해 올바로 사용해야 한다. 부자는 부유하기 때문에 멸망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재물을 자기의 쾌락만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부자가 만일 그의 재물을 자기의 영생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지혜롭게 사용했더라면 가난한 사람보다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한번 죽은 다음에는 잘못을 만회할 또 다른 기회는 없다.

 (4) 성경 말씀만이 사람을 회개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성경을 거절하면, 심지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권면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 나사로의 말도 그들은 믿지 않았다.


 E.

 한 가지 남는 의문은, 왜 예수께서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 비유를 사용하셔서 오해를 일으키도록 하셨는가 하는 문제이다. 가능한 해답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비유였으리라는 것이다(그랜드 종합주석, 13:368).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익히 아는 이야기를 인용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전달하시는 것이다. 너희들이 잘 아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말이다. 비록 그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비유에 불과하지만 재물을 사랑하고 영원한 미래를 위해 준비하지 않고 살아가는 너희들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요약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잘 알고 있는 비유였다. 비유란, 어떤 진리를 전달하려는 하나의 방법이지 사실은 아니다. 이 비유의 주제는 죽으면 영혼이 천당과 지옥에 간다는 영혼 불멸이 아니라, 현세의 재물을 쾌락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데 쓰라는 재물의 사용에 관한 것이다. 나사로는 비록 가난했지만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영생을 준비하며 의롭게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부자는 비록 이 세상에서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지만 영생을 준비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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