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잡히던 날 밤 총독 빌라도와 헤롯왕이 함께 예루살렘에 있었다. 갈릴리 지방의 분봉 왕이 어떻게 예루살렘에 와 있었는가?
A. 세 아들에게 영토가 분배되었다. 사마리아 여인 말다게 (Malthace)의 첫째 아들 아켈라오에게는 유대지방과 사마리아를, 둘째 아들 안디바 (Antipas)에게는 갈릴리 지방을,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빌립에게는 이두매와 드라고 지방을 주어 다스리게 했다. 유대 지방을 차지한 아켈라 오는 향락과 사치를 사랑했으며 잔인한 면이 있었다. 그가 즉위한 첫해에 반란이 일어나자 그는 군대를 투입하여 3,000명을 무차별 살육하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런 아켈라오를 두려워했으며 그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폭도들을 지지했다는 구실로 대제사장을 파면 한 일, 아내와 이혼하고 불의하게 재혼한 일, 그의 잔혹성들이 유대인들의 눈에 거슬려 아켈라오는 인기가 없었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인들과 연합하여 로마 황제에게 호소하여 아켈라 오를 추방하는 데 성공하였다(AD 6), 유대인들은 이제 헤롯 왕가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기들이 원하는 왕을 세우기를 원하였지만 로마는 아켈라오를 추방하고 그 자리에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을 두어 유대지방을 다스렸다. 따라서 예수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은 로마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에는 제5대 총독인 빌라도(Pontius Pilate, AD 26-36)가 다스리고 있었다.
헤롯 안디바(HHerod Antipas, BC 4-AD 39)는 헤롯 대왕이 사마리아 여인 말다게에게서 낳은 아들이었다. 아버지 헤롯의 유언에 의하여 그는 갈릴리와 페래아 지방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영토가 침례자 요한과 예수께서 사역하던 곳이기 때문에 복음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헤롯은 헤 롯 안디바를 말한다(
마 14:1-7; 막 6:16-22; 눅 3:1, 19; 9:7, 9; 13:31; 23:7-15). 그는 당시의 로마 황제 디베료를 기리기 위하여 유명한 도시 디베랴를 건설하였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이 있는 남쪽 유대 지방은 제5대 총독 빌라도가 다스리고 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 잡힌 예수를 빌라도가 재판하게 된 것이다.
B. 북쪽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인 헤롯 안디바는 이때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의 헤롯 궁에 와 있었다. 왕들은 총독과 유대관계를 맺고 지냈으며 이해 관계에 따라 서로 방문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명절 때는 왕들과 지도자들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죄 없는 예수님을 재 판하기가 부담스러웠던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마침 예루살렘에 헤롯왕이 와 있는 것을 기억하고는 그에게 보내어 이 귀찮은 문제의 처리를 맡기려 하였다.
헤롯은 처음에는 호기심과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보기 원하였다. 그는 예수님에게 동정을 표시하고 난폭한 것에 대해서 유대인들을 책망하였다. 헤롯은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잠잠하시자 헤롯은 곧 이 복잡한 문제에 끌려 들어가기를 거절하고 다시 예수를 빌라도에게 보내 버렸다.
예수를 심문한 헤롯은 헤롯 대왕(Herod the Great)이 아니라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는 그의 아들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였다. 그는 침례자 요한을 죽였으며 예수께서 그를 “저 여우"라고 부르신 일도 있을 만큼 간교하고 비열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헤롯은 유월절 때문에 예루살렘에 와 있었다. 그의 마음에 신앙이 없어도 유대인의 절기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여 백성의 환심을 얻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