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은 왜 예수님을 말씀(logos)이라고 표현했을까? 말씀이라는 표현은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이거나 하나님의 능력의 한 부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A. 요한은 헬라어를 말하는 로마의 한 식민지 도시인 에베소에 살면서 요한복음을 기록하였다. 에베소는 헬라 문화와 철학에 젖어 있는 도시였다. 에베소뿐만이 아니었다. 요한복음을 읽을 독자들이 사는 곳은 대부분 헬라 철학에 젖어 있는 이방인의 도시였다. 그런 지역에서 요한은 역사적인 인물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분 자신이 바로 창조주라는 것을 이해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요한복음은 그런 목적으로 쓰여졌다.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이며 우주의 창조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함에 있어서 수신자들(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들이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말씀(
logos)이라는 헬라 사상의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용어를 사용한 것이지 그 사상까지 그대로 채용한 것은 아니었다.
B. 요한이 사용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스(
logos)는 헬라 사회에서 널리 쓰여지고 있었던 말로서, 그 당시 무슨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헬라 철학에서
로고스는, 근본적으로 우주는 자연 발 생적으로 존재하고 영속된다는 우주관 및 역사관에서 온 지적 능력 혹은 이성(理性)이다.
로고스는 사물의 배후에 있는 영원한 질서이고 우주적 법칙이다. 헤라클레토스(Heraclitus)는
로고스를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로 보았다. 플라톤(Plato)에게 있어서 로고스는 단순히 어떤 개인적 기능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충만한 법칙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로고스를 인간 덕(德)의 원천으로 보았다. 스토아(Stoa) 철학자들은
로고스를 우주적 원리로 보았다. 세계의 이성적 질서와 우주적 이성은 로고스 안에 표현되어 있으며
로고스는 인간에게 지식을 주는 법칙이다. 만물이
로고스에서 나오고
로고스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후기 스토아 철학에서는
로고스가 점점 자연 그 자체와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헬라 철학의
로고스는 인격적인 요소가 부족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윈리요 이성적인 법칙이었지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인격체(Redemptive Logos)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은 범신론적으로 흐르고 말았다.
예수님 당시에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요 지성인이었던 필론(Philo)에게 있어서도
로고스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로고스를 사용하는 필론의 용법은 다양해서 통일된 원칙을 찾아내기 힘들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헬라적 사상과 유대적 신념을 동시에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우선 필론에게 있어서
로고스는 하나님은 아니다. 이
로고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우주와 동일시될 수 있다. 따라서 필론의
로고스가 헬라적인 개념이냐 유대적인 개념이냐 하는 것은 학자들에 따라서 그 견해가 다르지만, 요한이 사용한
로고스와 개념이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필론의
로고스는 인격적인 요소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C. 요한이 그 당시 쓰여지는 헬라의 용어인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리스도를 표현했기 때문에 헬레니즘의 사고방식으로
로고스를 해석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요한이 스토아 철학의 개념을 사용했느니 심지어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느니 하는 학설들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요한이 사용한
로고스는 헬라 철학의 로고스, 심지어는 필론의
로고스 와도 그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저자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사상을 전달하고 싶을 때는 그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그 개념이 전달되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같은 개념을 가졌다고는 볼 수 없다. 요한은
로고스를 범신론적이고도 비인격적인 우주의 원리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우주의 법칙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설명한다. 즉 창조 전에 함께 있었고 이제는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나타내는 데
로고스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성육신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에
로고스라 하였으며 동시에 예수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뜻의 결정적 표현이기에
로고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의
로고스 사상은 헬라 철학에서 온 것이 아니라 구약의 히브리 사상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D. 한국어의
“말씀” 이나 헬라 철학에서의
“말씀”과는 달리 유대 사상에 있어서
“말씀” 이란, 단순한 소리나 이성(理性)이 아닌, 실제적인 능력과 개성을 가진 독립적이고 인격적 존재를 의미 한다. 구약에는 어느 곳이나 이런 말씀이 강력하고도 충만하며 창조적인 성격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분이며, 우리를 위경(危境)에서 구원하는 존재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
시 33:6),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그 위경에서 건지신다” (
시 107:20). 따라서 히브리 사상에서 말씀이란, 단순히 언어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똑같이 능력이 있으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구원하기도 하는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이
“태초부터 계셨으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 이라는 요한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요한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태초부터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했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가장 잘 드러낸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해 그 당시 헬라 철학에서 통용되던 로고스(logos)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로고스의 사상은 비인격적인 헬라 철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을 나타내는 구약의 히브리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