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은 이해할 수 있으나 물로 거듭난다는 말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물이라고 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침례이다. 그렇다면 물의 침례와 성령의 침례는 별개의 것인가?
A. 유명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니고데모가 예수님에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가 있느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예수께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직접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 본문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오해하면 기독교의 중심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 다. 많은 주석가들이 고심하면서 다음과 같은 각각 다른 의견들을 내놓았다.
(1) 물로 난다는 말은 아기가 물, 즉 엄마의 양수로부터 태어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물로 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육적인 출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간적 출생만 가지고는 부족하며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이다.
(2) 물이란 것은 성령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물 즉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한 것이다.
(3)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침례자 요한의 침례를 말한다. 따라서 본문은 침례자 요한의 예비적인 물의 침례와 그리스도의 침례인 성령의 침례를 받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4) 물로 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물의 침례를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약에서는 물을 침례를 상징하는 데 많이 사용했고 물의 침례는 구원의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기 때문이다.
B. 위의 설명 중 어느 것이 본문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인가? 물과 성령에 대하여 요한의 의도와 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요한이 쓴 글 중 물과 함께 어떤 것을 동시에 언급한 경우를 찾아보는 것이 필수적인 성경 연구 방법 중 하나이다. 첫 번째는
요한일서 5:6이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여기서 물과 피는 그리스도 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큰 두 사건을 뜻한다고 본다. 즉 피는 십자가의 희생을 의미하며, 물은 물의 침례(water baptism)를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요한일서 5:8이 증거하는
“성령과 물과 피” 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해석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물의 침례와 십자가의 피로 우리에게 오셨고 성령께서 그 모든 것의 증인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물은 물의 침례를 의미한다.
C. 요한복음에는 물을 의미하는
휘도르(
hudór)란 말이 20회 쓰였는데, 5회는 침례와 관계되어 쓰였고, 10회는 단순히 마실 물로 쓰였다. 그리고 5회는 생수(living water)의 의미로 쓰였다. 다시 말하면, 요한복음에서는 물이 영적으로 사용될 때는 침례 아니면 생수로 쓰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3:5의 물은 생수나 영생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3:5의 물은 생수나 영생 같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침례밖에 남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과 성령으로 남에서 물은 성령으로 거듭남보다 열등하거나 대치되어야 할 것으로 나타나지 않고 동등하게 쓰여졌기 때문이다.
D. 신약의 다른 책에도 위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구절들이 나온다.
디도서 3:5에서 바울은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중생의 씻음은 물의 침례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
E. 요한복음 3:5의 물이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의미한다면 침례 받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가? 먼저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물의 침례는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는 행위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주시라 고백하는 신앙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침례의 영 적인면을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그런 침례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F. 예수께서는 물의 침례와 성령의 침례를 구분하였는가? 성령 은사 운동(charismatic movement)에서는 이 절을 근거로 삼아 그리스도인에게는 이중 침례(double baptism experience)의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라는 말씀은 물의 침례와 성령의 침례를 구분한 말씀이 아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물의 침례는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는 의식”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침례의 “거듭나는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시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 사람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물 속에 들어가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는 생명을 건 결단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은 보편적이었고 그들은 가정과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런 결단의 침례 결심이 성령과 관계없이 이루어질 리가 없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
고전 12:3) 없기 때문이며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
고전 12:13)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의 침례와 성령으로 말미암는 거듭남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고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물이냐 성령이냐 하는 것이 아니고
“거듭남” 인 것이다.
물에 대한 요한복음과 신약의 용법으로 보아 본문에서 물이란 물의 침례, 즉 그리스도인의 침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물의 침례와 성령의 침례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