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은 안식일에 일한다는 유대인들의 비난에 예수가 대답한 말이다. 이 말씀은 과연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한다는 말씀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다는
창세기 2:3의 말씀과는 어떻게 조화되는가?
A.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친 예수를 안식일에 일했다고 유대인들이 비난하자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답변의 의미는 하나님이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므로 그도 일한다는 것이었다. 예수의 답변은 두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하나는, 하나님이 과연 안식일에 일하시는가 하는 문제요, 또 하나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선언이었다.
그의 대답은 유대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일하신다는 생각은 유대인들도 동의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한다는 생각이 유대 사상에 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결코 쉬지 않으며, 타는 것이 불의 성질이고 찬 것이 눈의 성질인 것과 같이 하나님의 소임은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식일에도 해는 빛을 발하고 강은 흐르고 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안식일에도 계속되고 있으니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은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B.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일곱째 날, 즉 안식일에 안식하셨다. 그렇다면 안식하셨다는 것과 일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나님은 분명히 안식일에 창조라는 그의 일로부터는 쉬셨다. 그러나 우주를 붙드는 그의 자비와 긍휼과 사랑은 쉴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모든 일을 쉬신다면 태양이 안식일에 비추지 못하도록 하신단 말인가? 천체들이 안식일에는 운행을 정지해야 하는가? 시냇물은 흐르기를 멈추고 바다는 그 쉼 없는 조수의 운동을 중지해야 하는가? 이렇게 되면 모든 축복은 사라지고 사람은 멸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잠시라도 그의 손을 멈출 수가 없다. 하나님이 일한다는 것은 그런 고차원적인 의미에서였다. 그러므로 예수가 말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은 안식일에도 쉼 없이 일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인 나도 일한다” 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또한 이날에 행해야 할 일이 있다. 생활에 불가결한 일은 행해져야 하고, 병자는 돌보아야 하며, 곤핍한 자들의 필요는 공급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 졌으므로 자비로운 행위는 안식일의 의도와 완전히 조화된다” (시대의 소망, 207).
C. 유대인들을 분노케 한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고의로 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참람된 죄를 범했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38년 된 이 만성 병자를 다른 날에 고쳐 줄 수도 있었고, 자리를 들고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고의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의 쉬심과 하나님의 일하심은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창조라는 엿새 동안의 일로부터는 쉬셨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창조한 만물의 운행이 중지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는 한시의 쉼도 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붙드시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런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써 당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셨다. 유대인들을 분노케 한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죄를 범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