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 성경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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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를 보았는가?
성경절
문제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 즉 메시야의 때를 기다리며 즐거워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때를 이미 보고 기뻐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석
 A.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신뢰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아브라함이 유대인들의 육체적 조상임에는 틀림없지만 아브라함의 신앙은 유대인들의 신앙과 달랐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아브라함의 태도는 그들과 전적으로 달랐다. 아브라함은 메시야가 온다는 복된 소식을 즐거움으로 기다리며 기뻐하였다.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 가운데서 “천하 만민”이 복을 얻을 메시야가 탄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거듭된 약속을 믿고 기뻐했을 것이다. (창 12:1-3; 22:17, 18). 아브라함은 이삭의 기적적인 탄생, 모리아산의 경험 등을 통하여 그의 아들 이삭이나 그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실히 믿고 기다리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B.

 그러나 아브라함이 그때를 “보고, 기뻐”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어떤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죽은 다음에 낙원에 있다가 드디어 메시야가 오시는 것을 보고는 기뻐했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두 가지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첫째로, 아브라함이 낙원에 있다는 것은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둘째로, “보고, 기뻐" 했다는 동사는 과거형으로 쓰였다. 만일 예수가 이 말씀을 할 때 아브라함이 낙원에서 기뻐하고 있었다면 현재형이 쓰였어야 마땅하다.

 어떤 학자는 아브라함이 만난 멜기세덱은 사실상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실제로 메시야를 만난 셈이며 그러므로 그가 멜기세덱을 만난 후에 기뻐한 것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성경상의 근거나 설득력이 약하다.


 C.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예수께서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말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요한이 여기서 말하는 죽음과 삶은 심판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죽음과 영생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는다는 말은 죄로 말미암는 영원한 멸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브라함 이야기가 나온 것은 유대인들이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어찌 우리가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 왔기 때문이다(8:52).

 예수께서는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메시야의 때와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영생을 미리 보고 기뻐하였다고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자연스런 해석은 예수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그의 후손 중에서 메시야가 탄생할 것을 믿고 또 환상 중에 메시야의 오심을 미리 보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창세기 15장의 환상 중에서 아브라함은 세계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았는데(창 15:6-21) 그때 메시야의 강림을 미리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본문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환상 중에 보고도 기뻐했는데 너희들은 왜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하느냐는 책망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요약
 본문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그게 무슨 허황된 소리냐고 유대인들이 질문한데 대한 답변이다. 즉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의 환상 중에서 세계 역사의 파노라마를 보았는데(창 15:6-21) 그때 메시야의 강림과 그 안에서 얻을 영생을 미리 보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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