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은 누구인가? 유대인을 말함인가 아니면 이방인들을 말함인가? 혹은 복음을 거절한 사람을 말하는가?
A.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은 유대인이 아니지만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을 말한다. 복음서에는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상반된 느낌을 주는 말씀들이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냉정하게 말씀했다.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예수께서는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
마 10:5, 6)고 말씀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예수님은 유대인만 위하는 배타주의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과 동시에 그와는 반대되는 행동이나 말씀을 한 때도 많다.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부러 뙤약볕이 내리쬐는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여 우물가에 앉아 위대한 대화를 시작하셨다. 로마의 백부장에게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
마 8:10) 못했다고 칭찬했는가 하면, 친절을 베푼 믿음의 용사 역시 사마리아인이었다(
눅 10: 30-37). 승천하기 직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부탁을 통하여 온 천하를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다(
마 24:19). 예수님의 이 말에서 위대한 진리가 선포되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양들은 더 이상 혈통적인 양들에게만 국한 되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는 국가와 민족을 뛰어 넘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형성된 것이다.
B.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이 양면성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복음은 전 세계를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신 목적은 이 세상 전체를 위해서였다(
3:16). 그러나 이스라엘의 복음화가 급선무였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 이스라엘을 통하여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다.
C. 그러므로
“다른 양들”은 유대인이라는 혈통의 범위를 넘어서 예수를 영접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 한 것이었다. 그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의 인도를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 즉 다른 양들이었다.
다른 양들이란, 유대인의 혈통을 넘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무리가 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고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
10:16)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