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을 잡수신 날과 돌아가신 날에 대한 기록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하루 차이가 난다. 어떤 기록이 옳은가? 만일 두 기록 중 하나가 틀렸다면 틀린 기록이 성경에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가? 만일 둘 다 옳다면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A. 모든 복음서는 예수께서 목요일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먹고 그날 밤에 잡혔으며 금요일 오후에 죽고 안식일을 무덤에서 쉰 다음 일요일 새벽에 부활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최후의 만찬 즉 유월절 저녁 식사에 대한 공관복음의 기록을 보면 예수는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셨다(
마 26:17-30:
막 14:12-26; 눅 22:7- 38:
요 13:1-3). 그리고 그 다음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즉 14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15일 무교절 첫날에 돌아가신 것이 된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는 유월절 전날, 즉 13일에 유월절 식사를 드시고 (
13:1-3), 14일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는 날 새벽에 유대인들이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 한 것을 봐서 사람들이 아직도 유월절 식사를 하지 않은 14일의 새벽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14일 제9시, 즉 오후 3시쯤 유월절 양을 잡기 시작할 때에 유월절 양의 원형이신 예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무교절일의 첫날이며 성회로 지켜야 할 절기 안식일인 데 제7일 안식일과 겹쳤기 때문에 큰 안식일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19:31). 그렇다면 과연 어느 기록이 맞는가?
B. 먼저 유월절 절기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순서이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절기 중 제일 먼저 시작되는 절기였다. 그것은 기념적인 동시에 표상적인 절기였다. 즉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동시에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해 주실 것을 표상하는 절기인 것이다(
고전 5:7).
구약
레위기 23:5, 6에는
“정월 14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달 15일은 무교절” 이라고 되어 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이 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
출 12:3)라 하였고, 그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14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
출 12:5, 6),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
출 12:8-10)고 하였다. 즉 10일에 미리 구별해 둔 어린양을 14일 해 질 때에 잡고 무교병과 쓴 나물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함으로써 유월절이 시작되 는 것이며, 그 다음날 15일을 무교절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무교절은 아빕월 제15일에 시작되어 칠 일간 계속되었다.
“또 그달 십오 일부터는 절일이니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 것이며 그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 제칠일에는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니라” (
민 28:17-25). 만일 제15일 절기 안식일이 제7일 안식일과 겹칠 경우에는 그 안식일은 큰 안식일로 불렀다.
C. 다시 우리들의 문제로 돌아가자.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을 잡수신 날이 13일(요한복음)인가 14일인가(공관복음)? 만일 13일이라면 예수께서는 왜 하루 먼저 유월절 식사를 했는가? 그리고 왜 공관복음 기자들은 13일을 유월절 하루 전 날이라고 부르지 않고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 이라고 불렀는가? 만일 14일에 규례대로 유월절 식사를 했다면 예수님은 14일 저녁 양 잡을 때가 아닌 15일에 돌아가신 것이 되어 표상을 이루지 못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면 좋을까?
먼저 공관복음이 옳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이 14일에 규례대로 정상적인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15일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데(
고전 5:7, 8) 왜 유월절에 돌아가시지 않고 다음날 돌아가시어, 유월절의 표상을 이루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다. 즉 어린양의 희생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14일 저녁에 잡는 양은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잡는 것이요, 그 외에 무교절 동안에는 매일 성전에서 드리는 양이 있다는 것이다(
민 28:19). 예수께서는 개인적으로 유월절 양을 잡는 14일 저녁에는 규례대로 유월절 식사를 하셨고, 성전에서 양이 희생되는 무교절 오후 3시(유대 시간으로 제9시)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양의 표상을 이루신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1) 요한이 14일 저녁 식사 를 왜 유월절 전 식사라고 했는지,
(2) 요한이 왜 무교절 첫날도 아닌 1월 16일 안식일을 큰 날이라고 불렀는지,
(3) 14일 저녁에 양을 잡으라고 시간을 정해주심으로써 어린양인 그리스도가 죽을 때를 강력히 암시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요한복음의 기록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 요한복음의 기록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유월절 전인 13일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잡수셨다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13:29에 아직도 명절에 쓸 물건을 사지 않은 것으로 봐서 유월절 식사 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요일인 14일 저녁 양 잡는 시간(오후 3시부터 해 질 때까지)에 십자가에서 표상을 이루고 돌아가셨으며 안식일이 무교절 첫 날이기 때문에 큰 안식일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설명은
(1) 예수께서 왜 14일이 아닌 13일에 유월절 식사를 했는지,
(2) 그날을 공 관복음 기자들이 왜 무교절 첫날 양 잡는 날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못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설명을 인정하면 공관복음의 기사가 틀린 것이 되어 문제가 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관복음의 기록이 맞는 것으로 인정하며, 동방정교회는 요한복음의 기록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편 기록만 옳다고 주장하면 다른 편은 틀린 것이 되어 성경의 영감성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면서 두 기록을 조화시켜 보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그해의 니산월 시작에 대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하루의 계산 차이가 나서 논쟁이 있었으며, 공관복음은 바리새인들의 주장을 채택했고 요한복음은 사두개인들의 주장에 따랐기 때문에 하루의 차이가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성경상 혹은 문헌상의 뚜렷한 근거가 없는 것이 흠이다.
D. 우리는 2,000년 전의 유월절 풍속과 예외적인 특별한 사항들에 대하여 전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확실한 설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여러 설명들을 살펴 볼 때 그래도 가장 설득력이 있는 해석은 예수께서 14일 유월절 어린양이 죽는 시간에 돌아가셔서 유월절 양으로서의 표상을 이뤘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드시 14일 해 질 때에 잡아야 하며, 뼈 하나도 부러뜨려서는 안 되는 유월절 어린양(14 일에 잡는)이 가리키는 모든 표상이 그리스도를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가 무덤에서 부활한 날은 수세기 동안 첫 열매를 흔들어 왔던 요제절(16일)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요한이 기록한 순서대로 13일 저녁에 만찬을 먹고, 14일 유월절 양 잡는 시간에 돌아가시어 표상을 이뤘으며, 큰 안식일인 제7일 안식일에 구속 사업을 마치고 쉬셨고, 요제절인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이 된다. 요한복음이 제일 나중에 기록된 책이라는 점도 요한이 기록한 것의 신빙성을 높여 준다. 그럴 경우 공관복음과의 조화를 위해서 다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그러나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1)
요한복음 19:14에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이 “유월절의 예비일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유월절 하루 전이라는 말이 아니고 유월절 기간 중에 닥친 제7일 안식일의 예비일이란 말로 보아야 한다. 신약에서 “예비일" (paraskeua)은 안식일의 하루 전인 금요일의 대명사였다.
(2) 13일에 유월절 식사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왜 예수께서는 공식적인 유월절 저녁 식사를 먹기 하루 전에 유월절 식사를 했는가?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먹기를 원했다(
눅 22:15). 아마도 예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인 자신이 유월절에는 희생되야 하며, 그래서 그 어린양의 고기로 하는 유월절 식사를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제자들에게 하루 전에 유월절 식사 준비를 하라고 명했을 것이다. 또 사실상 14일 오후 유월절 양의 원형이신 예수께서 돌아가심으로 그 순간부터 유월절 식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전에 새로운 제도를 세우시는 의미로 미리 식사를 한 것일 것이다.
유월절 식사에 당연히 나와야 할 양고기에 대한 언급이 없고 떡과 포도즙만 등장하는 것이 그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준다. 제자들이 여기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지 않았을까? 아마도 유월절 식사에는 두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14일 저녁은 공식적인 유월절 식사가 있었다 (regular Passover meal), 그리고 명절이 시작되는 전날 저녁에는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이브의 저녁처럼 예비적인 축제 만찬(ceremonial preliminary meal)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특별히 유대인들의 시간 계산으로는 13일 저녁 해 질 때 이미 유월절이 시작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잡수신 만찬은 이 예비적 만찬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생각된다. 공식적인 만찬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왜 공관복음의 기자들은 13일 저녁의 식사를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에 준비 했다고 말했을까? 유대 시간으로 하면 13일 저녁은 이미 14일이다. 무교절의 첫날 양 잡는 날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예수께서는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
눅 21:37) 쉬셨기 때문에 저녁 식사는 아마도 해가 진 후에야 가능했을 것이고, 이날 밤부터 온 이스라엘은 벌써 유 월절 축제 분위기에 잠겼을 것이다. 사람들이 크 리스마스 하루 전인 12월 24일을 크리스마스 밤이라고 부르고 더 성대히 기념하는 것처럼 해 질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의 시간 관념에 익숙한 제자들이 그날 밤을 유월절 밤이라고 부른다 해서 특 별히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유월절 만찬과 예수께서 죽은 날에 대한 공관복음의 기사와 요한의 기록이 서로 달라 하루 차이가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것이다. 즉 예수께서는 유월절 하루 전인 13일 밤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먹었고 14일 유월절 양 잡는 시간에 표상대로 죽었으며 구속 사업을 마치고 안식일에 쉬었다. 그리고 16일 요제절에 부활한 것이다.
유월절 양인 자신이 유월절 양이 죽는 그 시간에 죽어야 할 것을 잘 아는 예수께서 하루 전에 미리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한 것이다. 이것은 예외적인 식사가 아니라 명절시 시작되는 13일 저녁 식사를 예비적인 유월절 축하 만찬으로 먹는 풍습을 따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제자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내일이면 폐지하게 될 유월절 식사 대신 새로운 제도를 세우시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이날은 유월절 하루 전인 13일 저녁이었지만 이미 해가 저물어 14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날 밤을 유월절 양 잡는 날이라고 불렀을 것이다.